걷는 중입니다_오늘도 커피 온도는 적당했다

by 정림올제

요즘 내가 가장 열심히 하는 일은, 생각보다 별것 아닌 일이다.
이를테면 산책을 나가기 전 가방을 두세 번씩 확인하는 일. 빠진 건 없는지, 지금은 필요 없어 보여도 혹시 모르니 챙겨야 할 건 없는지 괜히 한 번 더 들여다본다.

예전 같으면 “왜 이렇게 쓸데없는 데 시간을 써?” 하며 스스로를 다그쳤을 텐데, 요즘은 그냥 둔다. 아, 내가 지금 이런 사소한 데서 안정감을 느끼는구나 싶어서.

요즘의 나는 유난히 작은 것들에 민감하다. 커피는 뜨겁거나, 차갑거나 미지근한 건 먹지 않는다.

산책은 늘 비슷한 코스로 걷는다. 이유는 없다. 음악도 비슷한 곡을 반복해서 듣는다. 새로운 것을 찾을 기운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이미 알고 있는 감정 안에 머무는 게 편해서인 것 같다.

웃긴 건 이런 반복들이 삶에 무슨 대단한 도움을 주느냐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이 없다는 점이다.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눈에 띄게 나아지는 것도 없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이 사소한 반복들이 하루를 버티게 한다.

가끔은 나 자신이 조금 웃기게 느껴진다.
삶에 대해 진지한 글을 쓰면서도, 하루의 만족도가 ‘오늘 커피 온도 딱 좋았음’ 같은 문장으로 결정되니까. 거창한 목표 대신 커피 한 모금의 온도에서 하루의 의미를 찾는 내가 어른스러워 보일 때도 있다.

삶이 늘 거창할 필요는 없다.

모든 날이 성장과 성취로 가득 차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아무 쓸모없어 보이는 행동들이 사실은 나를 오늘까지 데려온 작은 장치일지도 모른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붙잡는 난간처럼, 눈에 띄지 않지만 없으면 불안해지는 것들.

산책을 하다 보면 비슷한 풍경이 펼쳐진다.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 산책 나온 강아지들.
매일 반복되는 장면이지만 그 익숙함이 나를 안심시킨다.

오늘도 세상은 이렇게 흘러가고 있구나 하는 확인처럼.

그래서 오늘도 운동화 끈을 천천히 묶고, 늘 마시던 커피를 마시고, 같은 길을 걷는다. 크게 달라지지는 않지만, 무너지지도 않는 방식으로. 잘 살고 있지는 않아도 어찌어찌 살고는 있다는 신호를, 나는 이런 사소한 것들에서 확인한다.
사소한 것들이 나를 지탱한다.

그리고 지금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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