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선정작
상상 속에서 나는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었는데
머리로 할 수 있는 일과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달라서
지금은 어떤 것도 그리지 못한다
잘못 그린 그림은 찢지 말고
조금씩 지우면서 그려보라고 말해 준 사람
그렇게 하다 보면
잘못된 것도 고칠 수 있다고
새로 그린 그림보다
오래 그린 그림이 좋아졌을 때
이미 내게서 지워져 버린 사람
잘못 그린 것도 아니었을 텐데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사람들
그리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과거의 얼굴들
지우려는 마음과는 다르게
텅 빈 도화지 앞에서는
무엇이든 그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