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클래식 이즈 베스트

이 인증샷을 안 찍으면 싱가포르 안 온 것과 같다

by 김동주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해외여행이라면 첫 번째는 여권이고, 두 번째는 휴대폰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 두 가지만 있다면 오지가 아니고서야 웬만하면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바로 '돈'인데, 우리는 싱가포르에 도착하기 전 한국에서 원화로 약 5만 원 정도만 환전을 해 왔기 때문에 어서 돈을 바꾸러 환전소에 가야 했다.


여의도 증권가와 같은 느낌인 래플즈 플레이스로 가면 많은 환전소들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우리는 '더 아케이드'라는 건물의 2층 어딘가에서 돈을 바꿨다.


1층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많이 몰려 있더라도 신경 쓰지 말고 2층으로 올라가 보시길.

훨씬 잘 쳐주기 때문이다.


방법은 쉽다.

먼저 왔다 갔다 돌아다니면서 업체들을 비교해 봐야 한다. 한 건물, 같은 층을 사용하는데도 환율이 다르기 때문이다. 마음에 드는 업체를 찾았다면 원하는 만큼 달러나 원화를 건네면 된다. 그럼 설명할 필요도 없이 싱가포르 달러로 교환해 준다.


아주 만족스러운 환전이었다.

혹시라도 돈을 덜 줄까 봐 세어 보았는데, 아주 칼같이 정확했다.


물론 국내에서도 쉽고 편리하게 환전을 하는 방법이 많기는 하지만..

또 적은 금액이라면 현지 환전소를 찾아가는 것이 괜한 에너지를 쏟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해보시길 바란다.


여행은 쉬운 것만 하기 위해 떠나는 것이 아니니까.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에서 시도해 보기 위한 거니까.


만약 조금 실수하고 손해를 보더라도 그것마저도 인생 전반적인 시야에서 봤을 때는 값진 가르침이 될 것이다.

물론 싱가포르의 환전소들은 당신에게 손해를 입히지 않을 테니 마음을 놓아도 괜찮다.






20대 초반,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오고 나는 해외여행 예찬론자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그렇게까지 찬양하고 다닐 필요는 없었는데, 조금 많이 부끄럽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멋진 곳에서 맛있는 것을 먹으며 경험한 것들을 자랑하는 예찬이 아니었다는 것일까?

내가 찬양한 것은 '낯선 곳에서 처음 만난 상당히 등신 같은 자신과 조우'였다.


누군가 이런 질문을 던질 수도 있겠다.

왜 그렇게 해외여행을 좋아하냐고.


그렇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해 주고 싶다.


'견문이 넓어지는 건 해외여행의 목적이나 궁극적인 장점이 아니에요.

굳이 가지 않아도 되는 곳에, 자초해서 제 발로 떠나는 그 모든 과정, 행동력 자체가 바로 포인트예요.

그 과정 중에서 새로운 걸 보고, 먹고, 듣게 되지만 그건 부수적인 것들이죠. 마치 사은품처럼 말이에요.


그러니까 제 말은, 인생이 그렇잖아요.

시키는 것만 하고 살아갈 순 없는데, 우리들은 주체적으로 '굳이' 무엇인가를 해볼 겨를이 없이 자라 버렸어요.

결국엔 어른이 되고 나서야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죠.


근데 그 답을, 저는 여행에서 찾았어요.


떠나보세요.

계획할 자신이 없다면 처음은 패키지 여행도 괜찮고, 이미 많은 곳을 다녀 본 유경험자를 대동하는 것도 괜찮아요.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해보는 것' 자체에 답이 숨겨져 있거든요.'






환전을 한 역에서 마리나 베이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사실 싱가포르는 모든 관광지들이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따라서 부지런히, 걷는 것을 좋아하는 관광객이라면 3일 정도면 주요 포인트를 모두 돌 수 있으리라.


우리는 걸어서 마리아나 베이까지 가기로 했다.

전에 왔을 때도 자주 걸어 다녀서, 가는 길은 이미 익숙했다.


루트는 인증샷을 찍기 위해 머라이언 동상 쪽으로 향한 다음, 다리를 건너 마리나베이 쇼핑몰에 닿는 것.


싱가포르에 왔다면 당연히 가야 하는 곳 중에 하나가 바로 마리나 베이다.

저렴한 숙소에서 지내며 경비를 아끼다 여행의 마지막 날 이 건물의 호텔에서 묵으며 호캉스를 누리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러기에는 비용이 많이 들기에 나는 항상 호캉스를 사뿐히 포기해 버리는 편이다.


대신 슈퍼트리쇼나 분수쇼는 꼭 챙겨 보는 편이었는데, 어쨌든 무료로 제공되는 관광지를 마다할 여행객들은 없을 테니까.


날은 눈부시게 맑았고, 아직 여행 초반이라 나의 체력은 풀로 충전되어 있었다. 습하고 뜨거운 햇살에 점점 지쳐가긴 했지만, 여전히 컨디션은 좋았고 그렇게 첫 번째 관광 명소 멀라이언 동상에 도착했다.


돌이켜보면 나와 싱가포르의 첫 만남이 바로 이 멀라이언이니까.


항상 사람이 많은 이곳에서는 명당을 찾아 인증샷을 찍기 위한 인파로 북적인다. 그곳에서 한 컷 건지기 위해서는 타인의 사진에 출현하는 것쯤은 별것 아닌 일로 여겨야 할 것이다.


각도를 잘 잡고 옆으로 고개를 돌려 입을 한껏 벌려보자. 그럼 저 멀리 마주한 멀라이언 입에서 쏟아지는 폭포수가 나의 입에 골인되게 사진을 찍을 을수 있을 것이다. sns에서 봤던 누군가의 싱가포르 여행 인증샷처럼 말이다.


'어라?'


근데 이러고 있는 것이 나밖에 없다.

원래 여기 오면 다들 물 받아먹는 사진 찍느라 바빴는데 그새 유행이 바뀌었나 보다.


유행이 바뀌면 어떻고, 남들이 안 하면 또 어떤가?

나면 재밌으면 됐지.


물을 받아 마시는 결과물을 확인하며 웃음이 터졌다.

그러며 다짐했다.


'저녁에서는 마리나베이 위의 배를 베어 무는 인증샷도 남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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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나베이 주변은 운동하는 사람들이 항상 많다.

조깅이나 자전거 등 건강을 신경 쓰는 사람들이 많는데, 그 사람들을 바라보며 이곳에 살며 매일 조깅을 하는 나를 상상하다가... 그만둬버린다.

나는 지금도 공원 바로 곁에 살고 있지만 집밖으로 좀처럼 잘 나가지 않기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국에 가면 나도 운동을 시작해야지'라고 의미 없는 다짐을 해본다.


부지런히 걸어 드디어 마리나 베이에 닿았다.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를 반겼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이 시원하진 않았다.


전에 왔을 때는 냉방병으로 고생한 기억이 있는데, 전체적으로 에너지를 아끼려는 것인지 돌이켜보니 에어컨을 세게 트는 곳이 잘 없었다. 상관없었다. 오히려 나에게는 딱 적당히 시원한 온도였으니까.


우리는 찬찬히 걸으며 내부를 구경했다.

찬란히 빛나는 명품샵들이 늘어져있고, 요즘 sns에서 핫한 바샤 커피도 보였다.


바샤 커피는 미리 찾아보고 간 지라 나도 마시려고 했는데, 문제는 마실 자리가 없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빽다방이나 메가 커피처럼 저렴한 카페도 아닌데, 사람들이 한참이나 기다려 테이크 아웃으로 받아 들고 근처 계단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국이었으면 별점 테러를 당했으리라.


그래서 실내를 구경만 했다. 기념품으로 하나 사 오려다가 그것도 말아버렸다. 커피보다는 설탕 막대가 탐났는데, 그것 때문에 사기에는 어쩐지 돈이 아까웠기 때문이다.


계획했던 바샤 커피를 뒤로하고 목이 말라 다른 카페를 찾았다.


항상 신기한 것이지만 싱가포르는 앉아서 쉴만한 카페가 잘 없다. 앉을자리가 있는 카페는 자리가 없다. 자리 맡기가 거의 전쟁통에서 가족 찾기 수준.


어쨌든 그래서 우리는 유명한 %(일명 '응') 커피에서 테이크 아웃을 해 건물 밖 어딘가 바닥에 앉아 잠시 쉬기로 했다. 아직 더웠지만, 해가 넘어가고 있으니 그늘에 앉으면 괜찮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 커피에는 사람이 없고, 그 옆에 어딘가 익숙한 카페에만 사람이 바글바글한 것이 아닌가?


'헤이티'라는 곳이었는데 국내 모 카페와 캐릭터 로고가 매우 흡사해서 깜짝 놀랐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중국에서 예전에 유행했던 브랜드라고 하는데, 나는 두 브랜드에 대해서 자세히 모르기 때문에 실제로 한쪽이 영향을 받았는지 어떤지는 모르겠다.


무튼, 그곳에서 베리와 망고가 들어간 음료를 주문해 보았다. 그 두 가지 맛을 고른 이유는 가장 미는 메뉴인지 커다랗게 따로 설명된 메뉴판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문하기 전 기다리며 공차처럼 '당도와 얼음 양을 물어보는 거 아니야?'라고 했는데, 실제로 물어봐서 살짝 당황했다. 당황한 이유는 나의 언어 능력이 점점 쇠태하다 못해 바닥을 치는 상태이기 때문.


이럴 때는 기본이 최고지.


다행히 '레귤러'라고 말하니 외국인인걸 알아차린 직원분께서 잘 이해하고 주문을 받아주셨다.


음료의 맛은 성공적이었다.

달달했고, 과육이 씹혔고, 가성비도 좋았다.


궁상맞은 나는 플라스틱으로 되어있는 일회용 컵을 잘 씻어 집에 들고 가고 싶었지만, 이번에는 말기로 했다.

아직 여행 일정이 많이 남아 있으니, 최대한 짐을 늘리고 싶지 않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냥 궁상맞게 씻어서 챙겨 올 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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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상맞은 이야기가 나온 김에 더 궁상맞은 팁을 하나 전수하려 한다.

(진짜 좀 궁상맞으니 애용하는 불상사는 없길 바란다.)


싱가포르의 경우에는 마리나베이에 카지노가 있다. 여권을 확인하고 입장료 없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인데, 물론 내가 도박을 하라고 권장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내가 이곳을 언급하는 이유는 '들어가면 물이 공짜, 음료가 공짜'이기 때문이다.


목이 너무 마르고, 앉아서 쉴 곳이 필요한데 돈이 한 푼도 없는 상황(에 가까운 배낭 여행자)라면 이곳에서 잠깐의 오아시스를 경함 할 수 있을 것이다. 단, 걱정스러운 것은 물 한잔 얻어먹으러 들어갔다가 인생을 탕진할 수도 있다는 것.


도박에 빠지면 패가망신의 지름길이오, 도박을 끊기란 다이어트나 금연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하니 애초에 손을 대지 않기를 권하는 바이다.


혹시라도 안에 들어가면 탄산음료, 테따릭, 마일로와 같은 음료나 한 잔 마시고 '이런 곳이 카지노구나' 구경만 하고 나오길 바란다.

제발.


마리나 베이의 장점은 또 다른 곳에도 있다.

바로 푸드 코드가 맛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곳의 한식집이 있는데, 김치찌개가 아주 일품이다(제발 맛이 바뀌지 않길 바란다).


해외여행을 오래 다니거나, 혹은 해외에서도 한식을 수혈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럴 때 추천하고 싶다.

한식의 세계화가 되길 바라지만, 다른 나라에 나가 보면 식당에서 한식을 사 먹는 것은 금전적적으로 상당한 비용을 필요로 한다. 퀄리티라도 좋으면 괜찮겠지만, 어딘가 아쉬운 한식이면서도 비싸기만 한 곳들이 훨씬 많아 속상함을 말로 이룰 수 없다.


하지만 푸트 코드는 가격도 부담스럽지 않으며, 빠르고, 맛도 괜찮다.


그래서 나는 이곳에서 한식을 주로 먹는다. 거의 내가 마리나베이 푸드코트에서 밥을 먹으면 한식으로 정해져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번에는 김치찌개로 시작했는데, 역시 한식은 해외에서 먹는 한식이 최고다. 아직 여행을 시작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돌아가면 먹을 음식 리스트'를 작성하고 싶어지는 맛이다.


반면 대동이는 나시르막을 먹었다.


입이 까다로운 대동이인데 어째서인지 해외에서 좀처럼 한식을 찾지는 않는다.

반대로 나는 입맛이 까다롭지 않은데 해외만 나가면 한식이 먹고 싶어 진다.


이렇게 입맛의 중간지점을 찾기 힘든 사람과 함께 하기에도 역시 '푸드 코트'만 한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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