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웰컴투싱가포르

장담하건데 공기 청정기 주식은 오른다

by 김동주

#6 웰컴투싱가포르



KakaoTalk_20230505_013829445.jpg




어린 시절 아빠의 회사 동료분께서 싱가포르에 다녀오시는 길에 선물을 하나 사다 주셨다.

나에게 준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내가 갖게 되었으니 나의 선물이라고 치자.


멀라이언 조형물이었는데, 아래쪽에 소형 오디오가 들어 있어서 전원을 켜면 조명과 함께 음악이 나왔다. '웰컴 투 싱가포르'이랴는 말과 함께 '싱가포르아~ 우 싱가포르아~'라는 느낌의 가사였는데 뒤에 가사는 알아들을 수가 없어 멜로디만 남아있다.


어쨌든 나의 싱가포르에 대한 첫인상은 그 기념품이었다.


처음 싱가포르 여행은 다녀온 것은 20대 초반이었는데, 그때는 모든 것이 신기하고 긴장돼서 정신이 없었다. 때문인지 그때 선명하게 남아있는 장면은 없다. 느낌적 느낌만 있을 뿐.


두 번째 싱가포르 여행은 20대 후반이었는데, 그땐 쫌 익숙해졌었는지 자연스럽게 현지를 활보하며 지나치게 걸어 다녀 결국 몸져누운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진심으로 아파서 병이 들었다. 냉방병도 한몫했다.)


그리고 이번 싱가포르 여행은..


사악한 호텔 가격으로 시작해, 사악한 룸 컨디션으로 끝이 났다.


물론 그 사이사이는 즐거운 경험도 많았지만.


이 글을 읽고 싱가포르 여행을 포기하는 사람이 없길 바란다. 이건 내가 돈을 너무 아껴서 생긴 상황이니 말이다.





싱가포르에 여행 오는 많은 사람들이 좋은 호텔에서의 인증샷을 남기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나는 '좋은 호텔'보다는 가성비 좋은 곳을 골라, 부리나케 돌아다니는 스타일이라 이번에도 나름 적정선의 호텔을 골랐다.


아니, 골랐다고 생각했다.


1박에 9만 원.


이미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물가가 폭등하며 싱가포르에서의 10~20만 원짜리 호텔은 우리나라 모텔(중에서도 좋은 편은 아닌)과 다름이 없어서 기대를 크게 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심지어 인피니티 풀 인증샷으로 유명한 마리나베이 호텔의 경우에도 1박에 약 80만 원가량 하지만 국내 80만 원짜리 호텔의 룸 컨디션을 기대하고 가면 기대가 가루가 되어 바스러지리라.


그러니 9만 원짜리 호텔은 어떻겠는가?


물론 직원은 친절하였으며 수건도 잘 갈아 주었고 지내는데 '나쁜'건 없었지만 문제는 그 이외의 '좋은'것을 찾기란 참으로 힘든 곳이었다.


우선 저렴한 이유 중 하나가 위치였다.


홍등가 근처에 있어서 밤늦게 들어올 때면 화려한 네온 조명 너머로 언니들이(실제로는 동생일 것 같지만) 쭈욱 늘어서 앉아있는 것이 보인다. 어린아이가 있는 가족단위라면 묵기에 최악의 조건이 아닐까 싶다.


룸 컨디션도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엄청났다.


창문 없이 오래된 에어컨이 풉풉 계속 돌아가니 미세먼지가 아니라 거대 먼지를 청소기마냥 흡입하는 기분이 들었다. 덕분에 처음 호텔에 들어갈 때는 옆방들에서 기침 소리가 계속 들려 '코로나인가..?'라고 걱정하는 정상적인 여행자들이었는데, 곧 우리도 그 기침 대열에 참여하게 되었다.


코가 간지러워서 계속 재채기가 나는 것이다.


오죽하면 공기가 너무 안 좋아서 '진짜 잠만 자고' 아침이 되자마자 숙소를 나가야만 했다.

방이 좁고, 화장실과 목욕탕의 곰팡이, 이불 커버의 자국 같은 건 그러려니 해야 했다.


'이게 싫으면 내가 돈을 많이 벌어야지.'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든다.

'돈이 많으면.. 다른 나라 갈 듯..?'

호텔의 트라우마 때문에 생긴 솔직한 감상이다.


그럼에도 역설적이게 나는 싱가포르가 좋다.

파란 하늘도 좋고, 길거리에 알록달록한 풀들도 좋다.


'그런데 이렇게 앉아있을 만한 곳이 없었던가..?'


이번 여행에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싱가포르는 앉을 곳이 없다'이다. 쇼핑몰 카페에 들어가도 테이크 아웃만 하는 곳들이 많고, 자리가 있다면 카페인데 밥을 같이 팔고 있어서 음료만 마시러 들어가기 눈치 보인다.


맥도널드나 스타벅스 같은 곳은 자리 잡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


'도대체 왜 쇼핑몰 중간에 의자가 없을까?'


오죽하면 음료를 사들고 쇼핑몰 밖으로 나가 땅바닥에 삼삼오오 앉아 놀고 있는 사람들을 어렵지 앉게 볼 수 있을 정도.


로컬 쇼핑몰로 갈수록 당연한 문화인 듯싶었다. 대동이와 나는 다음에 또 싱가포르에 오면 꼭 돗자리를 챙겨 오자고 말할 정도. 그러니 여행 일정은 자연스럽게 하드 해졌다.


눈 뜨자마자 호텔의 풉풉 에어컨을 피해 도망 나가면 밥 먹을 때, 지하철이나 버스 탈 때를 제외하고는 미친 듯이 걸어 다녀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루에 2만 보는 거뜬히 걷는 인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먹는 족족 다 에너지로 쓰는 기분.

그러니 화장실도 별로 가고 싶지 않네.'


점심을 먹고 잠시 호텔에 들어가 누워서 좀 쉬고 싶은데, 먼지바람을 떠올리면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심지어 그곳에서 벗어나야지만 기침을 멈출 수 있었다. 호텔 내에서는 계속되는 재채기에 복근 운동이 따로 필요 없을 지경이었다.


'잠깐, 나 지금 싱가포르가 좋은 이유를 말하려고 했는데..?'


뭐 그건 차근차근 정리해 보도록 하자.

keyword
이전 06화#5. 그, 김대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