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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선 May 16. 2024

K - 장춘기

앞집 뒷집 할것 없이 부부싸움 중

와장창!! 그 작은집에서 깨질 물건은 뭐가 그렇게 많은지.... 동생과 나는 무서워서 그 좁은지 장롱 속에 숨어서 숨죽였다. 어린 나이였다. 아빠를 말릴 수도 엄마를 말릴 수도 없었다. 우린 옆집으로 도망을 가거나, 날아오는 물건을 피하기 위해서 구석진 곳으로 숨어야 했다. 한편으론 나가서 말려야 하나? 라는 생각도 했지만, 쉽사리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한 날은 부부 싸움 뒤에 엄마의 눈에 시퍼런 멍이 생겼다. 무슨 이유여서 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물건이 맞아서 생긴 멍인지, 아빠가 때려서 생긴 멍인지는 모르겠지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다행이었다. 하지만 싸움은 잦았고, 물건이 밖으로 날아갔다. 접시 깨지는 소리, 상이 날아가는 소리, 화분이 깨지는 소리. 다양했다. 물건들이 집 앞에 있는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졌었다. 살림 살이들이 날아가고 깨지고를 반복했다. 어느날엔 엄마가 넘어지면서 깨진 화분 선인장 가시에 찔려서 병원에 실려간 적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아찔하다. 어린 나이였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내 자신이 무능력 하고 한심해 보였다.


이사를 오고 나서 무슨 이유 때문인지 부모님은 싸우는 일이 잦았다. 아마도 돈 문제였을 것이다. 돈 때문에 이사를 해서 나를 힘들게 하고 돈 때문에 부모님은 매일매일 싸우니 ‘돈은 중요하구나. 돈은 많아야 하는 구나. 부자가 되고 싶다.’난 어린나이부터 그런 생각을 하며 살았다. 웃기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내 꿈은 성인이 될 때까지 부자가 되는 거였다. 나는 장녀로서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 이 글을 부모님이 보면 많이 슬플 것 같다. 부모님을 욕보이려고 쓰는 글이 아니라고 바라보셨으면 좋겠다. 


내가 좀 커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언젠가 엄마가 나에게 이야기했다. 참고로 우리 부모님도 그렇고 나도 부산 토박이다. "엄마가 도저히 너희 아빠랑 못 살겠어서 짐 싸서 친구네에 도망간적이 있었어. 근데 너희 둘 울음소리가 계속 귓가에 계속 들려서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가. 내가 그때 안 돌아왔으면 내 새끼들 어찌 됐을꼬" 난  나이가 40세가 됐지만 엄마에게는 아직도 내 새끼라고 부릴 때가 있다. 지나간 이야기라고 아무렇지 않은 척 이야기를 하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우리를 떼놓고 나간게 미안해서 인지, 그때 그시절 힘든 기억이 떠오르신건지 눈시울이 빨개 져서 말씀해 주셨다. 자식새끼를 집에 혼자 두고 집을 나간 매정한 엄마가 된 것 같아서 미안했단다.


난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고 나서야 엄마를 많이 이해 하게 됐다. 나도 지금 아이를 낳고 몸이 안좋아서 엄마에게 잠깐 맡기고 한의원을 간적이 있었다. 약 2시간 정도를 비웠다. 그 시간동안 아이의 울음소리가 귀에 맴돌아서 볼일만 보고 바로 집에 들어왔던 기억이 났다. 우리 엄마도 우리를 생각하는 마음이 이런 마음이었겠지? 부부싸움도 잦았고, 사는것도 녹록지 않은 시기였지만,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그 시기를 이겨내셨다는걸 안다. 우리가 나이를 먹고 성장을 하면서 두 분은 더이상 싸움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다 괜찮아 진 줄 알았지만, 집안 환경이 더 좋아지진 않았다. 시간이 지나며 그 환경에 익숙해져서 모를 뿐이었다.


옛날 아파트가 거의 없던 시절, 우리 동네는 빨간 벽돌로 지은 집들이 골목마다 낮은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이 마을을 처음 온 사람이 본다면 이 집이 저 집이고 저 집이 이집 같아 보였을 것이다. 골목마다 비슷한 집들이 나란히 줄지어 있었다. 그 중 한집이 우리 집이었다. 좁은 골목길에 많은 집들이 있다 보니 옆집에 숟가락 젓가락이 몇 개인지 밥그릇 국그룻이 몇 개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서로의 왕래가 많았다. 지금와서 하는 말이지만, 그때 그 시절  사실 우리 집뿐만 아니라 부부싸움을 하는 집이 많았다. 옆집 아줌마가 싸우면 엄마가 가서 말렸고, 우리 집이 싸우면 옆집 아줌마가 와서 말렸었다. 옆집이 안 싸우면 맞은편 집에 부부 싸움이 났었다. 철 없던 시절 내 부모가 싸운다는 생각은 금방 잊어 버리고 아이들은 다른집에 싸움이 났다고 하면 싸움구경을 하러 나갔다. 지금와서 생각 해보면 그 때 그시절 우리집 뿐만 아니라 다들 힘든 시기였다. 하지만, 난 우리집이 가장 불행 하다고 생각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고 내가 더 나이가 들고 마음이 너무 힘들었지만, 마냥 불만을 이야기하고 투정만 부릴 수 없는 아이로 자연스럽게 자랐다.  우리집 가정환경이 날 그렇게 키웠다. 장녀의 무게를 일찍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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