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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선 May 16. 2024

K - 장춘기

K장녀의 시작


나는 초등 학교,중학교 시절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흘러서 그럴 수도 있지만, 학교가는 길, 집으로 가는 길만 생각이 또렷하다. 생각보다 키가 컸고, 내성적이고, 소심했던 아이였다. 초등학교 4학년까지도 손가락을 빨다가 선생님께 혼난 기억도 난다. 반친구들 모두 앞에서 혼난 기억이 나서 그다음부터는 손가락을 빨지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한켠으론 마음이 아프고, 한켠으론 그것도 기억이라고 내 머릿속에 지워지지 않는 한장면으로 남아있다는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아이를 키우면서 손가락을 빨면 정서적으로 불안한 아이라는 타이틀이 붙는데, 내가 생각해도 정서적으로 불안했던 것 같다. 소심하기도 했지만, 자존감이 많이 낮은 아이였다. 그 자존감은 아가씨가 되어서도 이어졌고, 결혼하고, 내 아이를 낳기 전까지도 이어졌다.


엄마가 이야기했다. "지선아 너는 엄마가 입하나 댈 거 없이 혼자서 알아서 잘하는 아이였어."  맞다. 말 수는 적었지만, 혼자서 잘하는 아이로 자랐다. 반면 눈빛은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멍한 눈빛이었으며. 손과 발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은 채  걷는 아이였다. 부모 눈에는 착한 첫째 딸 이었을지 모르지만 친구들 눈에는 그저 존재감 없는 아이였다. 엄마는 사진이 남는 거라고 사진을 자주 찍어줬었다. 지금처럼 휴대폰으로 찍어서 출력할 수 있는 시대는 아니었다. 집에 필름카메라가 있었는데 사진이 아주 잘 나왔다. 사진을 찍어서 인화를 해서 앨범에 꼽아 두었다. 그래서 집에 큰 앨범이 아주 많았다. 수 천장의 사진에는 특이한 점이 있었다. 친구와 생일날 찍은 사진, 수학여행이나 소풍 때 찍은 사진, 혼자서 찍은 사진 수 천장의 사진 속 나는 표정이 없었다. 나는 그때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사진 속 내 모습이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내 어릴 적 불행한 감정들이 커서도 치유가 되지 않아 사진 속에 투영되었을지도 모른다.


유년기란 어린이가 성장·발달하는 단계의 하나로, 보통 7~8세까지로 초등학교 2학년까지를 말한다. 가장 좁은 범위로는 유치원생인 3~6세이며 가장 넓은 범위로는 태어날 때부터 14세(중학교 2학년)까지이며 중학교 3학년부터는 완전히 유년이라고 하지 않는다. 물론 전자와 후자 모두 다 어린 시절을 얘기하나 전자는 매우 어린 유아기 시절만을 포함하는 것이고 후자는 성장기 시절로 어느 정도 자란 시기까지 포함한다. 후자의 경우 소년기와도 겹친다.(나무위키에서 발췌) 나는 유년기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중학교 때까지 특별히 기억나는 추억이 없었다.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았던 이야기나,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갔던 이야기들, 함께 맛있는 식사를 했던 경험들 말이다. 아니면 그때의 기억이 사라진 걸까? 어쩌면 이렇게 좋은 기억이라곤 없을까? 일부러 그 부분을 내 머릿속에서 지우기라도 한 듯 내 유년 시절의 기억은 존재감 없는 아이였던 내 모습밖에 생각이 나질 않는다.


엄마는 생계를 유지해야 했기 때문에 근처 소방서에 가서 소방관들의 밥을 지어 주는 일을 했다. 엄마에게 버겁고 힘든 일이었지만 우리도 주변에서 챙겨 볼 수 있고 돈을 벌 수 있는 최고의 일자리였다. 갈 길이 멀지만 일을 시작한 이후로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부모님께서 일을 시작하면서 첫째 딸로서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가졌었던것 같다. 그 당시 '항상 생각의 끝에는 돈을 많이 벌어서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가야지'로 이어졌었다. 나중에는 그 생각이 나를 잡아 삼켜 버린지도 모른 채 말이다. 나는 진로를 선택을 할 때도 내가 우선이 아니라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항상 우선 이었다. 그래서 공부보다는 빨리 졸업을 하고 싶었다. 공부가 하기 싫었다. 사실 공부를 왜 해야하는지도 몰랐다. 누군가 나에게 어떤이야기든 조언을 해줬으면 얼마나.좋았을까? 그 시절부모님은 사는게 갑박하고 바빴다. 딸이 어떤 고민을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지내는지 돌봐줄 여건이 안됐다. 그렇게 고등학교 대학까지 내가 선택했다.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일을 시작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막연한 걱정과 불안, 불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를 돌보는 일은 내 스스의 몫이었다. 내심 부모님의 원망도 많았다. 하지만 감정들을 밖으로 낼 수 없는 그런 아이였다. 어린 유년 시절부터 내가 성인이 되기까지 그 상처는 아물지 않고 더 커졌다. 지금의 내가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다.'더 재미있는 삶을 살 수 있어. 뭐든지 최선을 다해봐.  지금 인생이 전부가 아니야.. 더 크고 멋진 세상이 너를 기다 기다리고 있어'. '네가 걱정하고 있는 일은 벌어지지 않아. 네가 걱정을 한다고 해서 벌어진 일이 해결되진 않아. 걱정하지 마. 너에인생을 살아.'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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