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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선 May 16. 2024

K - 장춘기

자격지심에서 온 굴욕감

우리 세 가족 두 번째 이삿 날 이었다. 내가 태어나고 3번째 집인 것이다. 이삿날 아빠는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학교 등교날이 었기 때문에 나는 학교 가방을 매고 이사를 했다. 두번째 집보다 훨씬 더 높은 오르막 길 끝에 이사짐 트럭이 도착을 했다. 세번째 집으로 이사를 왔을 당시 이사할 당시 정확히 몇 학년이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지만 반대편에 살고 있던 남자아이를 생각하면 초등학교 1~2학년이었던 것 같다. 두번째 이사보다는 나이를 먹어서인지 아니면 그날이 나에게는 상처가 되었던건지 더 구체적으로 이사한 날의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내가 글을 쓴다면 꼭 이날을 글로 남겨 야지 생각을 할정도였다. 엄마 나 그리고 동생은 뭐가 그렇게 급했는지 아침 일찍 학교 등교 전에 서둘러서 이사를 했다. 이사할 당시 아빠는 없었다. 엄마는 두 아이만 지켜야 겠다는 생각이었는지 거칠고 불친절한 트럭 아저씨와 목소리를 높여 가면서 이사를 하셨으니 말이다. 아침 일찍 이사를 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동네는 조용했고, 이사할 집 앞은 시끄러웠다. 지금도 여리고 소녀같은 우리 엄마이지만, 이삿날 무엇이 우리 엄마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내가 지금 엄마 나이가 되어서 생각해보니 그 시절 힘듦이 느껴져서 마음이 아팠다. 엄마가 되고 엄마의 마음을 조금 이해할 때 쯤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우리 2칸짜리 방에서 단칸방으로 처음 이사할 때 그 집 얼마였어?“엄마는 말했다. "그때 시중에 전 재산이 100만원 있었다 아이가~." ‘100만원을 가지고 이사를 했다니...’ 그때는  너무나 힘들고 아픈 기억이었지만,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를 하는 엄마의 표정은 편해 보이면서도 슬퍼 보이기도 했다.  짐작해 보건데 그때 엄마 나이가 지금 내 나이였다. 엄마 32살에 나를 낳았으니 내가 8살 이었다면 엄마 나이 40대 초반이었을 것이다. 지금 내 나이 때의 엄마를 생각하니 그 순간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마음이 아팠다. 이 질문을 하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아서 엄마에게 미안했다. '엄마 많이 힘들었겠구나'. 아직 살아갈 날이 더 많이 남았던 청춘같은 40살이었다. 그 뒤로도 더 많은 날들을 힘겹게 살아온 엄마를 생각 하니, 눈물이 났다.



난 학교 가방을 메고, 이사하는 엄마의 뒤에 서서 뚱한 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었다. 그때 대문 앞에 낯익은 얼 굴하나가 쭉 고개를 내밀었다. 같은 반 남자아이였다. 그 장면은 마음 아픈 기억중 하나이다. 저학년인데도 성숙했던 나는 일찍 이사온 그때의 상황도 싫었지만, 아직 씻지도 않은 내 모습이 부끄러웠던 것 같다. 쥐구멍이 있다면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었던 나는 표현은 못했지만 마음으로는 울고 싶었을 것이다. 그때 충격이 컸는지 나는 내 가장 아픈 기억이 무엇인지 생각할 때면 그 장면부터 떠오른다. 멍한 표정의 내 얼굴, 그리고 이사하는 모습을 구경하던 그 남자아이와 눈과 마주친 순간을 말이다. 지금 그 순간이 왜 아픈 기억으로 남았는지를 생각 해보면 , 그날은 단칸 월세방으로 이사온 날이 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 모든 사람들이 다들 어려 웠다고 하지만, 나에게 꽤나 큰 충격적이었나 보다. 그 남자 아이는 반대편 2층 주인집에 사는 아이였다. 아침부터 이사하니 불구경하듯 구경하러 온 나온 것이었다. 그 뒤로도 난 그친구 얼굴을 자세히 본적이 없었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왜 이사를 했냐고 물어 올까봐 걱정됐다. 우리 집은  가난했다. 그때는 지금처럼 포장이사 업체도 없었지만, 그럴 돈도 없었기에 파란색 트럭한대로 이삿짐을 쌓고 쌓아서 이사를 했다. 엄마가 두번째 집으로 이사를 하면서 구매했던 식탁과 다른 가구들은 단칸방에 들어 가지 않았기 때문에 이사를 하면서 전 집에서 가지고 이사를 온건 장롱 하나 였다. 기존의 집에서 이사한집은 멀지 않았지만 트럭을 타고 산꼭대기를 오르듯 아주 높은 곳으로 올라왔고 비탈길 한켠에 이사할 집이 위치하고 있었다. 


우리가족은 그 집에서 고학년이 될 때까지 살았다. 아니 조금더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월경을 그 집에서 했으니깐, 초등학교 5학년은 훌쩍 넘겼다. 초등6학년 한복을 입고 찍은 사진도 그 집이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그 집에서 살았는지 새삼 생각하니 마음이 답답했다. 자아가 분리되던 시기의 나는 모든 상황들을 내려놓고 싶었던 적도 많았다. 그때는 이대로 평생 그 집에서 살아야 할 것 같았다. 막연한 불안감으로 항상 나를 괴롭혔다. 나는 내면도 외면도 자라고 있었다. 이 집에서는 떠오르는 기억들은 많았다. 부엌겸 욕실에 있던 작은 거울까지도 기억이 났다. 월세 단칸방의 기억은 잊어 버리고 싶어도 계속 기억 났다. 내 유년 시절에 살았던 집이 었다. 내가 살아오면서 마음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다. 그래서 그런지 이상하게 떨쳐 버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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