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선 May 16. 2024

K - 장춘기

가난의 익숙함

우리는 그렇게 비슷한 환경이지만, 조금더 깨끗한 집으로 이사를 했다. 그러고 다섯번째 집에서 10년 이상을 살았다. 그곳은 넓지도 않고, 여전히 화장실도 추웠지만, 방 두칸에 화장실이 집안에 있었다. 이제 아침에 서둘로 화장실을 갈 필요도 없었고, 샤월를 하고 있는 중에 손님이 와도 엄마는 문을 열어 줄 수 있는 상황이 가능 해졌다. 그렇게 가족과 함께한 이사는 끝이 났다. 난 어릴적 네번이사를 했다. 짧은 기간중에 여러번 이사를 한 셈이다. 단돈 100만원을 가지고 이사를 했던 우리 엄마는 그렇게 조금씩 모아서 조금 더 나은 집으로 이사를 했다. 그건 자녀들에게 조금더 나은 환경에서 키우고 싶었던 마음일거라는 걸 나는 안다. 


내가 살아가면서 집이라는 공간은 편안함이라고 생각한다. 청소년시기때는 어느 누구도 그랬겠지만, 집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시기 때는 가족이 적이라는 생각도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학교와 집밖에 몰랐던 나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선생님에 대한 불안을 집에와서 떨칠 수 있었다. 나는 많이 내성적인 아이었다. 친구들을 쉽게 사귀기 힘들었고, 선생님이 발표를 시켜야지만 어렵게 일어나 발표하는 아이였다. 그래서 그런지 아니면 시간이 너무나 흘러서 그런지 초, 중 학교 기억이 거의 나질 않는다. 기억이 안 난다는 표현보다는 특별히 기억해야할 무언가가 떠오르질 않는다. 학교가 재미 없어서 였는지, 내 성격때문이였는지 그래서 더욱 집이 좋았던 것 같다. 무너질 것 같은 집이어도 집은 항상 편안했다. 좁은 집에서 부대끼고, 서로 얼굴 붉혀 가면서 싸워도 작은 공간의 그 집에서 얼굴을 맞대고 살아야 했다. 웃픈일이지만, 엄마랑 싸워도 문을 쾅 닫고 들어갈 내방이 없었다. 아무리 티격태격해도 저녁엔 한 이불을 덥고 동생이랑 자야했다. 그렇게 서로에게나 내 집에 적응 하면서 살아 갔던 것 같다. 하지만 가난과 집의 편안함은 다른것 같다. 장녀와 가난이라는 무게는 너무 무겁고 마음이 힘들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집이라는 공간과 엄마라는 이름은 나에게 편안함이 었던것 같다. 이글을 쓰기전 나는 나에게 집이 불편한 거라고 생각 했다. 그래서 이글을 통해서 치유하고 싶은 목적이 컸다. 하지만 집이 싫었던게 아니라, 월세 단칸방이 싫었던 거고 가난이 싫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더 장녀에 대한 무게가 커졌는지도 모르겠다. 

이전 06화 K - 장춘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