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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선 May 16. 2024

K - 장춘기

내 가장 빛난 순간

나는 고등학교를 여상을 나왔다. 내가 졸업할 때쯤 여상이 남녀 공학으로 바뀌면서 고등학교 이름도 바뀌었다. 내가 살던 집에서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거리가 좀 있었다. 버스를 타고 40분은 가야지만 도착을 했었다. 고등학교 선택도 나의 몫이었다. 중학교 성적이 그리 좋지 않았다. 그리고 중학교 성적이 좋아야함을 인식하고 살지 않았다. 어머님은 나보고 공부해라는 말을 한적이 없었다. 부모님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바쁘셨기 때문에 그 모든 선택이 내 몫이었기 때문에 고등학교를 진학하는 문제도 나의 몫이었고, 내 책임이었다. 다른 고등학교의 선택사항도 많았지만, 나는 한 군데만 지원했다. 여상을 간 이유는 취업에 문이 넓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다른 고등학교를 가서 꼴지를 하기보다는 여상을 나와서 빨리 취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나라에서 지원해 주는 혜택을 받았다. 그때는 그 모든 혜택이 싫은 나이였다. 선생님께서 쉬쉬 했다고 하더라도 알만한 친구들은 다 알고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쯤 담임 선생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그때만해도 고등학교 여상다니는 친구들은 자리가 나면 빨리 취업을 할 수 있었다. 담임 선생님께서 나를 은행에 추천을 해주신다고 하셨다. 면접도 보고 취직을 하게 되면 나는 일찍 취업을 할 수 있는 거였다. 하지만 나는 거절 했다. 고등학교를 미리 졸업하는 마음도 불편 했지만, 그 때만해도 새로운 일을 도전하려는 마음에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주 아쉬운 자리였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는 시절만 해도, 내 위 선배까지 야간 고등부가 있었고, 내 나이대 부터는 야간반은 없어졌지만, 취업반, 진로반이 따로 있었다. 나는 진로반이였기 때문에 취업반에 다니는 친구들보다 공부를 더 했다. 아무리 취업이 우선이라서 이 고등학교를 지원 했지만, 진로반을 선택한건 나에게 있어 의외였다. 이때만 해도 대학은 나와야지 라는 고지식한 생각이 깊게 자리 잡은 상태였다. 그래서 바로 취업을 할 수 없었다. 아니 하고 싶지 않았다는게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공부랑은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수능은 쳤지만, 성적이 좋진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와서 가장 후회되는건 공부다. 지금와서 후회는 필요 없지만, 오로지 나 혼자 한 선택의 몫은 내가 감당하기에 조금 컸을 것이다. 그 선택이 옳은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엔 경험이 부족했다. 



고등학교 졸업반, 나는  주말이면 알바를 했다. 내 사회생활의 시작은 나레이터 알바였다. 고등학교 졸업반부터 아는 친구대신 알바를 나간게 그 시작이었다. 나레이터 알바는 새로 오픈한 가게에 전단지도 나눠주고, 마이크를 잡고, 가게를 홍보하는 일이었다. 나레이터 모델일을 생각보다 재미 있었다. 예쁜 옷을 입고 높은 운동화를 신고 사람들 앞에서 소리 낼 수 있다는게 나에게 벅찬일이었다.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테두리에서 벗어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서 다니는 것도 재미 있었다. 소심했던 청소년기에 나를 생각하면 전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내 적성에 맞아서 놀랬다. 지금도 나를 아는 주변사람들은 내가 나레이터 모델일을 했다고 하면은 놀란다. 내 성격에 어떻게 그일을 했냐고 말이다. 나도 신기하게 생각한다. 어쩌면 청소년기에 억압되어 있던 나를 다르게 표현하는 방식이되었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을 상대하는게 쉬웠다. 그리고 그 시기의 알바비에 비하면 아주 높은 금액이었다. 부모님께 손벌리지 않게 내 용돈도 벌고, 앞으로의 대학등록금에 보탬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주말에 자리가 있으면 알바를 나갔다. 참 내 성격에 힘든 알바 였지만, 생각보다 잘 적응했고,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사실에 재미 있었다. 어떻게 보면 내 주변 다른 친구들보다 일찍 일을 시작 했다. 번듯한 직장은 아니지만 일을 시작하고 가정에 보탬이 된다는 사실에 뿌듯했다. 


고등학교에 가서는 친구들과의 여느 고등학교 친구들 같이 즐거운 생활을 보냈다.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하면서 학교를 멀리 가게 되면서 버스를 타고 이동 하고, 고등학교 생활 동안 내가 선택하는 몫이 많이 질수록 내 스스로 더 독립적으로 변화됨을 느꼈다. 작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내 생각과 가치가 많이 변화됨을 느끼는 시작이되었다. 내가 가장 빛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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