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선 May 16. 2024

K - 장춘기

내 첫 번째 집에 대한 오해.

내 내면에 자아가 조금씩 꿈틀 거릴 때부터 결혼을 하기 전까지 내 방을 갖고 싶었다. 참고로 나는 29살 결혼을 했다. 여동생과 함께 쓰는 방 말고 나 혼자 지낼 수 있는 방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단칸 월세방 이었다. 내 바램과 다르게 그 시절 모두가 경기가 안 좋은 만큼 내가 사는 집도 점점 더 작아졌다.



내가 태어나 유치원 시절까지 살던 첫번째 집은, 벽돌로 지은 단단한 집은 아니었다.. 방 1칸, 화장실 그리고  마루가 있었고, 여러 집이 붙어서 살았다. 지금 생각하면 판자로 만든 집이었던 것 같다. 그 집은 방이 넓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방에는 항상 습하고 나프탈렌 냄새가 났다. 마루에는 아궁이가 있었다. 기억은 안나지만 아기때 기어다니다가 아궁이 솥안에 끓이는 물에 허벅지가 대여서 큰일 날뻔 했다고 엄마가 이야기 해주셨다. 허벅지에는  티나는 흉터는 아니지만 화상자국이 옅게 있다. 마당은 아주 넓은 공터였다. 둘레에는 돌로 쌓은 담이 있었다. 꽃을 좋아하는 엄마는 마당 주변에 꽃을 많이 심어서 집 앞은 다양한 꽃들로 화려했다. 그때, 1988년쯤 장난감이나 간식거리가 없던 시절이었다, 또 주변엔 다른집이 없었기 때문에 동생과 진달래도 따먹고 꿀이 나오는 빨간 꽃을 따서 빨아먹고 놀았다. 그 꽃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동생과 함께 꽃을 따서 돌로 찢어 소꿉놀이도 하고 , 흙을 가지고 성을 쌓으며 놀았다. 그때는 흙놀이가 최고의 놀이감이었다. 요즘엔 아이들이 흙놀이를 할 수 있는 놀이터나 공간이 없어서 아이를 키우면서 많이 아쉬웠다. 모래놀이도 키즈 카페처럼 돈을 내고 해야 하는 실정이니 정말 아쉽다. 유치원 시절 그집에 살면서 또래 친구들과 논 기억이 없었다. 항상 동생과 함께 놀았다.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가 아니었기 때문에 자유롭게 돌아 다니고 손에 만져 지는 것,  눈에 보이는 것들이 모두 놀이감이고 장난감 이었다. 



집에서 유치원에 가려면 긴 오르막을 걸어서 올라가야지 유치원 버스를 탈 수 있었다,  3살 터울이 나는 동생과 그 오르막을 매일 뜀박질을 해서 시간에 맞춰 올라갔다.유치원에 가지 못하는 동생은 항상 유치원 차량 앞에서 자기도 가고 싶다고 울었다. 엄마는 뛰는 우리들 뒤에서 위험하다고 멈추라고 소리를 지르며 우리 뒤를 뛰어 따라 왔다. 나는 오르막에 뛰어 올라와서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그 순간이 나는 기분좋았다. 오르막을 오르고 나면 눈 앞에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았다. 도로도 있고, 아파트도 있고, 슈퍼도 있고, 자동차도 많이 다녔기 때문이다. 내 발 밑에 마음대로 넘어가면 안 되는 경계선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항상 생각했다. '우리랑 사는 곳이 왜 다를까?'. 엉뚱한 생각이 많아 지는 그때가 좋았다. 다른 곳에 구애 받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뛰어 놀았다. 어린 나이이기 때문에 기억은 별로 없지만, 그집에서 불행하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었던 것 같다. 아무 생각이 없던 그 시절이 었다. 뒤돌아서 생각해 보면 그래서 그 집이 좋았다. 아무런 불안과 걱정이 없던 나이여서..



내 첫 번째집은 지금 철거되어 큰 병원이 들어섰다. 아주 크고 좋은 종합 병원이다. 지금도 그 동네 아니 그 지역 대표 병원으로 위험 있게 우뚝 서 있다. 이번에 가니 주차공간도 넓게 새로 정비를 했다. 내 두번째 집은 주차장이 되어 있었다. 그 병원을 볼 때마다 내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신랑과 함께 명절이나 시댁이나 친정에 방문 할때 그곳으로 자주 산책을 하러 나갔다. 웃긴이야기지만 신랑과 나는 초등 학교 동창이기 때문에 같은 동네에 대한 추억이 많았다. 그 병원을 지나갈 때면 내가 살았던 곳이라고 이야기 하면 여기 올때마다 이야기 한다고 신랑이 장난스럽게 이야기 한다. 내가 그렇게 자주 이야기 했던가? 좋은 기억이든 좋지 않은 기억이든 첫번째와 두번째 집은 항상 미련이 남았다.그래서 그병원을 볼때마다 왠지 슬픈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두번째 집으로 이사를 해야 했다. 첫번째 집 위치에 병원이 들어서기 때문이다. 맞다. 위에서 언급한 종합병원이었다. 우리의 거주지가 없어진다는 통보를 받고 보상을 받았다.그렇게 두번째 집으로 이사를 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