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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경 Feb 13. 2024

너를 보며

 과거에 나로 인해 힘들었을 남편을 생각하면 현재의 서운한 마음을 단번에 지우게 된다. 내가 얼마나 자잘한 사고를 치고 다녔는지, 남편의 속을 썩였는지, 차마 글에 담지 못한 이야기들이 수두룩하다. 그중 가장 미안한 건, 내 트라우마를 치료하느라 남편에게 트라우마를 남겨준 것이다. 

 남편은 2년 전까지만 해도 자다가 잠이 깨면 내가 옆에 있는지부터 확인했다. 옆에 없으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화장실이나 다른 방을 살펴본다고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미리 걱정하지 않고 큰일 앞에서 늘 침착한 남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음을 알고 많이 미안했다. 내가 치료받으며 일탈과 일상 사이에서 아슬아슬 줄타기하고 있을 때, 남편은 바닥으로 떨어질 나를 잡아주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었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아래의 글은 남편이 들려준 이야기를 남편의 시점으로 쓴 글이다.   


 잠결에 옆자리를 더듬었는데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눈을 번뜩 떴다. 가슴이 철렁했다.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해 보니 새벽 2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었다. 거실로 나갔다. 어둑했다. 닫힌 서재방 문틈으로 빛이 흘러나왔다. 문손잡이를 잡고 잠시 머뭇거렸다. 손에 땀이 났다.

제발….

 천천히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수경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다행이었다.


  “수경아, 잠이 안 와?”

  “응, 조금만 있다가 잘게. 걱정하지 마. 나 괜찮아.”

  “약 먹었어?”

  “응, 먹었는데도 잠이 안 오네.”

  “그래, 난 잘게.”     


 아무렇지 않은 척 침실로 돌아와 누웠지만,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수경이의 자살 시도 후 언제 또 그런 일이 있을지 몰라 불안했다. 내색할 수는 없다. 수경이는 내게 미안해하고 있다. 자신 때문에 내 인생을 망쳤다고 생각한다. 이혼을 요구하는 수경이에게 나는 힘들지 않다고, 우리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좋다고, 진심을 담아 말해도 수경이는 내 마음을 의심한다. 그래서 말이 아닌 행동으로 믿음을 주기로 했다. 내 할 일을 하며 수경이가 편히 아파할 수 있도록, 모르는 척하는 게 수경이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잠결에 옆자리를 더듬었는데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눈을 번뜩 떴다. 가슴이 철렁했다.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해 보니 새벽 3시. 거실로 나갔다. 어둑했다. 어느 방에서도 불빛은 흘러나오지 않았다. 집안의 모든 문을 열고 수경이를 찾았다. 수경이는 없었다. 베란다와 보일러실, 좁은 수납공간의 문까지 열어 봤지만, 수경이는 없었다. 토끼 스티커가 붙어 있는 수경이의 핸드폰만 거실 탁자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밖으로 나가 아파트 단지를 두리번거리며 수경이를 찾았다. 너무도 고요한 새벽이 무섭도록 시렸다. 아무 일도 없기를 바라며 큰길까지 나왔을 때, 수경이 목소리가 들렸다. 누군가와 싸우는 듯한 상황이었다. 소리가 이끄는 곳으로 급히 달려갔다. 수경이가 보였다. 작디작은 아이의 모습이었다. 내가 보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수경이가 영화 속 한 장면에 들어가 있는 듯했다. 텅 빈 4차선 도로 위에 잠옷 차림으로 서 있는 수경이. 수경이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쏘아보고 있었다. 작고 마른 손을 꽉 움켜쥐고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하늘을 향해 악을 썼다. 평소 하지도 않는 온갖 욕설을 내뱉었다.


 나도 하늘을 바라보았다. 저 까마득한 하늘에는 수경이가 믿고 있는, 아니 믿었던 신이 있겠지. 수경이는 처절히 무너져가는 자신을 보란 듯이 신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그저 지켜보았다.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었으니까. 지켜보는 일. 수경이가 마음껏 아파할 수 있도록 굳건히 곁을 지키는 일. 그게 나의 일이었다. 모든 걸 쏟아 낸듯 보였을 때 수경이 곁으로 다가갔다. 

   

  “괜찮아? 집에 가자.”

  “응, 집에 가고 싶어. 우리 집.”     


 수경이 어깨를 감싸 안고 집으로 갔다. 의사가 급할 때 쓰라고 주었던 약통을 꺼냈다. 새끼손톱보다도 작은 알약 하나를 수경이에게 주었다. 수경이는 잠잠히 약을 받아먹었다. 함께 침대로 가서 누웠다. 내게 등을 돌린 채 웅크린 수경이를 바라보며 나도 같은 방향으로 누었다. 머지않아 수경이는 아기처럼 곤히 잠들었다. 규칙적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수경이의 등을 보며 안도했다. 땀에 젖은 머리칼을 쓸어 넘겨주며, 있는지 없는지 모를 신에게 기도했다. 오늘 밤만이라도 이 아이가 편히 잠들 수 있도록 해 주세요. 다음 날의 일은 제가 맡을게요.      


 남편에게 들은 이야기로 남편의 시점에서 글을 쓰는 내내 마음이 먹먹했다. 들었던 이야기를 글로 펼쳐 놓으니 남편의 마음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남편의 큰 사랑을 다시금 느꼈지만 그만큼 아프기도 했다. 


 노트북 너머로 안마의자에 앉아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남편이 보인다. 이 남자, 혼자 감내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외로웠을까. 이젠 내가 너의 곁을 지킬 거라며 강단 있게 다짐해 본다. 따뜻한 눈빛을 보낸다. 서운함이 마음에 들어찰 때면, 어두운 새벽 나를 바라보고 서 있었던 한 남자를 떠올려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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