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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경 Feb 21. 2024

나를 돌보는 여정(3)

 글쓰기 플랫폼에 글을 발행하며 의기소침해질 때가 있다. 너무 징징거리는 거 아닌가. 이 정도는 누구나 다 아프지 않았을까. 사연 없는 인생 어디 있겠나. 이런 생각들이 마음에 들어찰 때면 쓰는 일이 머뭇거려진다. 그럼에도 어디에선가 나와 같은 이유로 웅크려있을 누군가를 생각하며 용기 내어 써 본다. 오래전 기록해 놓았던 병원 상담 내용과 가족의 기억을 빌려 그때의 이야기를 적어 내려간다.     


의사: 이번 한 주는 어떠셨어요? 약은 잘 챙겨 드셨나요?    

 

나: 잘 챙겨 먹으려고 노력하는데 저녁 약은 자꾸만 머뭇거리게 돼요.  

   

의사: 왜요?     


나: 저녁 약이 좀 센 것 같아요. 먹고 나면 바로 잠들어요. 좀 더 깨어있고 싶어요. 이렇게 많은 날을 계속 잠만 자며 보내도 되는 건지 싶어요. 저라는 사람이 조용히 사라지는 것도 같고….     


의사: 좋은 현상이에요. 기억하세요? 수경 님이 처음 병원에 왔을 때요. 현실을 부정하느라 계속 약만 찾았어요. 툭 하면 약을 먹었죠. 제가 정해준 용량보다 훨씬 더 많이요. 약 뒤에 숨어 모든 걸 회피하려 했어요.     


나: 아…. 그랬죠. 죄송해요.     


의사: 죄송할 일은 아니에요. 약을 먹고 안 먹고는 수경 님의 선택이에요. 사실 저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에요. 저에게 미안할 일은 아니죠. 모든 것은 수경 님의 선택입니다. 그런데 그 선택에 있어서 무엇이 좀 더 나은 선택인지 스스로 알아가고 있는 것 같아서 담당 의사로서 기쁘네요.     


나: 저 괜찮아지고 있는 건가요?     


의사: 충분히요.   

        

 선생님과 나는 함께 웃었다.


의사: 이번 주 특별한 일 없었어요?   

  

나: 있었어요. 정말 미치겠어요.     


의사: 편히 말해보세요.     


나: 저는 왜 이 모양일까요. 제가 너무 싫어요. 제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의사: 괜찮아요. 그게 무엇이든 수경 님은 그럴 수 있어요. 제가 늘 말하잖아요. 어른인 척하지 말라고요. 계속 넘어지세요. 편히요.     


 선생님은 사각 티슈를 미리 내 앞으로 갖다 놓으셨다.    

 

 "엊그제 친정에 갔어요. 집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했죠. 저는 친정에 발을 내디디면 숨이 턱 막혀요. 그 작은 공간에서 제가 품은 어두웠던 감정들이 순식간에 저를 휘감아버려요. 그날은 유독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아파트 단지 어딘가에 주저앉아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어요. 그것도 한밤중에요. 정신 차리고 보니 눈앞에 엄마가 보였어요. 엄마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셨어요. 해 봤자 저를 자극하게 될 거란 걸 엄마는 그때쯤 아셨던 것 같아요. 대신 남편에게 연락하셨어요. 엄마는 걱정과 안쓰러움, 절망과 허망이 담긴 눈으로 저를 지켜보다가 남편이 온 후 자리를 떠나셨어요. 남편은 눈물범벅이 되어 길거리에 앉아 있는 저를 일으키며 집에 가자고 했어요. 저는 남편 손을 뿌리치고 도망쳤어요. 마구 달렸어요. 큰 도로를 향해서요. 달리던 어떤 차를 가로막았어요. 차는 끼익 소리를 내며 멈추었고, 저는 그 차의 보조석에 탔어요. 그리고 애원했어요. “저를 데려가 주세요. 어디든 괜찮아요. 어디라도 좋으니 멀리 데려다주세요.” 남편은 차주님께 사과했어요. 내가 이 여자의 남편이다, 아픈 상태다, 너무 죄송하다. 사정을 설명하며 저를 차에서 끌어 내렸죠. 근데 너무 웃긴 게 뭔지 아세요? 저는 그 와중에 얌전히 남편 손에 이끌려 차에서 내렸어요. 그렇게 쉽게 내릴 거면 왜 위험을 무릅쓰고 그 차에 뛰어들었을까요. 남편 차를 타고 집으로 갔어요.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는데 불현듯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이 쏟아졌어요. 살결에 닿는 따뜻한 공기, 빨래의 섬유유연제 냄새가 너무도 편안하게 느껴졌거든요. 신발도 벗지 못하고 남편 품에 안겨 한참을 울었어요."     

     

 나는 언제나처럼 티슈를 한가득 뽑아놓고 눈물, 콧물을 줄줄 흘렸다.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따뜻한 집에 들어서는 순간, 아늑함과 함께 죄책감이 밀려왔어요. 남편에게 너무 미안했어요. 이토록 착한 사람에게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걸까. 저 때문에 수개월 잠도 편히 못 자는 남편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기는 기분이에요. 저는 늘 남편에게 미안해요. 어제도 미안했고, 오늘도 미안하고, 내일도 미안할 거예요. 사고 치지 말아야지, 굳게 마음먹는데 저도 모르게 자꾸만 이상한 행동을 하게 돼요. 결국 그 뒤치다꺼리는 남편이 하고요.”          


 선생님께서 안경을 추켜올리며 말씀하셨다.


 “수경 님은 어린 시절 부모에게 신뢰를 느끼지 못하고 필요한 만큼의 사랑을 받지 못했어요. 가정을 이루고 어른의 역할을 해야 하는 지금 그것이 튀어나와 어른이 되기를 거부하고 있어요. 늘 사랑받기를 원해요. 지금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사랑을 갈구해요. 원하는 대상으로부터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했을 때, 분노와 슬픔을 주체 못 하고 폭발하거나 주저앉는 극단의 선택을 하고요. 어린 시절에는 무조건 착한 아이로 있어야 부모로부터 버림받지 않고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래서 부적절한 행동을 하지 않았죠. 그런데 그로 인해 얻게 된 것이 없다는 것을 살면서 느꼈어요. 내가 착하게 살아봤자 아버지는 여전히 엄마를 때리고, 엄마는 그 불행을 나로부터 보상받고자 하는구나. 나는 아픈데 나를 돌봐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구나. 불안하고 외로웠을 거예요. 그래서 새 가족을 이루었을 때는, 그때와 반대로 행동합니다. 자해하고 일탈하며 반사회적 경향을 마음에 품으면서 남편을 시험하는 거죠. 남편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과연 이 가정은 내가 믿을 만한 안전한 곳인지 살피는 중이에요. 수경 님은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고 있는 거예요.” 

    

 의사의 마지막 말은 내 마음 어딘가를 건드렸다. 나는 무너져 내리듯 울었다. 그리고 물었다.


 “그럼 저는 언제까지 이렇게 남편을 괴롭히며 살아야 하나요? 저 스스로가 너무 끔찍해요.”     


 “약을 먹으며 분노와 우울을 조절하고 새로운 좋은 습관을 몸과 마음에 녹아들게 해야 합니다. 이미 경험한 과거의 나쁜 기억과 습관은 지울 수 없어요. 따라서 더 좋은, 또 다른 과거가 될 일들을 만들어나가는 수밖에 없어요. 지금 충분히 잘하고 계세요.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은 나중에 건강해진 후에 보답하면 돼요. 우리가 만난 지 10개월 정도 되었는데요. 처음 만났을 때보다 수경 님 마음에 여유가 생긴 게 느껴집니다.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생각들도 많이 사라졌고, 불안감도 줄었어요. 미래에 대한 희망적인 단어들도 자주 등장합니다. 다른 분들에 비해 치유 속도가 빠르세요.”           


 그즈음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막연히 잘 살고 싶어졌다. 내가 무얼 하든 내 옆에 굳건히 서 있던, 본인 품 안에서 편히 아파하라고 말해 주는 남편과 함께라면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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