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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경 Jan 17. 2024

그날, 잠시 멈추었던 날

내가 잠시 죽었던 날. 2013년 2월의 어느 날.

그 이야기를 써야 하는데 나는 자꾸만 머뭇거린다.

애써 외면하며 고개 돌리고, 눈 돌리고, 마음 돌리다가 오늘 적어본다.

퇴고와 탈고 없이, 그냥 온전히 담아 보고 싶다.

이렇게. 필터 없이. 과연 내가. 글을 발행할 수 있을까.  


그날 나는 출근을 하고 있었다.

2월의 첫 주였다. 많이 추운 날이었다. 시내버스의 가장 뒷좌석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꽁꽁 얼어붙은 논바닥, 생명이라고는 느낄 수 없는 그 차디찬 공기.

말라비틀어진 채,

저 애들이 다시 푸른빛을 띨 수 있을까.

슬펐다.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나 같았다.

버스의 훅한 히터 속에서도 나는 추웠다. 그리고 눈물이 흘렀다. 쉴 새 없이.

그때 내가 왜 울었는지 나는 지금도 알지 못한다. 그저 그때의 나는 그냥 울었다.

울다 보니 눈물이 더 많은 눈물을 끌어들였다.   

   

학교에 도착했다. 온몸에 눈물을 가득 휘감고 내 교실에 다다랐다. 자리에 앉았다. A4 용지를 꺼내 유서를 썼다. 처음 써 보는 유서는 의외로 아무렇지 않았다. 이게 고작 유서라는 것이구나.      


-업무 때문은 아닙니다. 개인적인 일 때문입니다. 죄송합니다.-     


내가 죽던 날, 내 마지막 말은 허망하게도 심플했다. 죽어야겠다는 그 순간에도 나는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발버둥 치고 있었다.     

 

유서를 접어 키보드 밑에 넣었다. 그리고 교실에 함께 있던, 업무를 보조하던 선생님께, 나는 몸이 아파 조퇴하겠노라 말하고 학교를 빠져나왔다.      


집에 가는 버스를 탔다. 창밖을 바라보았고 나는 계속 눈물을 흘렸다. 마지막 눈물임을 장담하며 원 없이 흘려보냈다. 나는 이제 더이상 울지 아도 돼.


버스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보았다. 별스럽지 않았다. 어차피 오늘은 내게 마지막 날이니까.     


집에 도착했다. 나는 집안의 모든 잠금장치를 걸어 잠갔다. 3중으로 된 현관문, 거실 베란다, 보일러실의 작은 창문까지 모두 잠갔다. 누구도 나를 구하러 들어오지 못하도록.


깨끗한 속옷으로 갈아입고, 좋아하던 원피스로 갈아입고, 남편 몰래 모아 두었던 약을 꺼내 하나씩 삼켰다.

그리고 침대에 누웠다.

눈물과 함께 서서히 잠이 찾아들었다.


거실 탁자에는 내가 남겨두었던,

너무도 허망한 문장이 남겨져 있었다. 인생을 마감하는데 이토록 짧은 문장이 전부라는 게 뒤늦게 허탈하게 다가왔다.    

 

-엄마 미안해요. 동생들아 미안해. 형준아 미안해. 나는 이제 좀 편안해지고 싶어.-    

 

 나는 죽는 순간에도 그토록 누군가에 미안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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