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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경 Feb 13. 2024

너를 보며

남편의 시점

#1

잠결에 옆자리를 더듬었는데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눈을 번뜩 떴다. 가슴이 철렁했다.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해 보니 새벽 2시를 막 넘어가고 있었다. 거실로 나갔다. 어둑했다. 닫힌 서재방 문틈으로 빛이 흘러나왔다. 문손잡이를 잡고 잠시 머뭇거렸다. 손에 땀이 났다.

제발...

손잡이를 살짝 돌려 문을 열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수경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다행이었다.

    

“수경아, 잠이 안 와?”

“응, 조금만 있다가 잘게. 걱정하지 마. 나 괜찮아.”

“약 먹었어?”

“응, 먹었는데도 잠이 안 오네.”

“그래, 난 잘게.”     


아무렇지 않은 척 침실로 돌아와 누웠지만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수경이의 자살 시도 후 언제 또 그런 일이 있을지 몰라 불안했다. 내색할 수는 없다. 수경이는 내게 미안해하고 있다. 자신 때문에 내 인생을 망쳤다고 생각한다. 이혼을 요구하는 수경이에게, 아니라고 정말 아니라고 진심을 담아 말해도 수경이의 눈빛에는 슬픔이 담겨있다. 그래서 말이 아닌 행동으로 믿음을 주기로 했다. 내 할 일을 하며 수경이가 편히 아파할 수 있도록, 모르는 척 하는 게 수경이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2

잠결에 옆자리를 더듬었는데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눈을 번뜩 떴다. 가슴이 철렁했다.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해 보니 새벽 3시를 막 넘어가고 있었다. 거실로 나갔다. 어둑했다. 어느 방에서도 불빛은 흘러나오지 않았다.

집안의 모든 문을 열고 수경이를 찾았다. 수경이는 없었다. 베란다와 보일러실, 좁은 수납공간의 문까지 집안의 모든 문을 열어 봤지만, 수경이는 없었다. 토끼 스티커가 붙어 있는 수경이의 휴대폰만 거실 탁자 위에 쓸쓸히 놓여있었다.    

  

아파트 단지를 두리번거리며 수경이를 찾았다. 너무도 고요한 새벽이 무섭도록 시렸다. 제발 아무 일도 없기를 바라며 큰길까지 나왔을 때, 수경이 목소리가 들렸다. 누군가와 싸우는 듯한 상황이었다. 소리가 이끄는 곳으로 급히 달려갔다.


저기, 수경이가 보였다.

작디작은 저 아이, 내가 보지 못했던 어린 시절 수경의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눈앞에서 재생되고 있었다. 가여웠다.

텅 빈 4차선 도로 위에 잠옷 차림으로 서 있는 수경이.

내 아내 수경이는 고개를 등 뒤로 꺾어 하늘을 쏘아보고 있었다. 그 작고 마른 손을 움켜쥐고서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하늘을 향해 악을 쓰며 울부짖었다. 평소 하지도 않던 온갖 욕설이 방언처럼 튀어 나오는 장면을 나는 그날 목격했다.     

 

멀리서, 나도 하늘을 바라보았다.

저 까마득한 하늘에는 수경이가 믿고 있는, 아니 믿었던, 신이 있겠지.

수경이는 신에게 처절히 자신의 민낯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그저 지켜보았다.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었다. 지켜보는 일. 수경이가 마음껏 아파할 수 있도록 굳건히 곁을 지키는 일. 그게 나의 일이었다.      


모든 걸 쏟아 낸 후 녹초가 된 수경이. 가여운 아이. 나는 그 아이 곁으로 다가갔다.     


“괜찮아? 집에 가자.”     

"응, 집에 가고 싶어. 우리 집."


수경이를 끌어안고 집으로 갔다.

의사가 급할 때 쓰라고 주었던 약통을 꺼냈다. 새끼손톱보다도 작은 알약 하나를 수경이에게 주었다. 수경이는 잠잠히 약을 받아먹었다. 함께 침대로 가서 누웠다. 내게 등을 돌린 채 웅크린 수경이를 바라보며 나도 그렇게 누었다. 머지않아 수경이는 아기처럼 곤히 잠들었다. 규칙적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수경이의 등을 보며 안도했다. 땀에 젖은 머리칼을 쓸어 넘겨주며, 있는지 없는지 모를 신에게 기도했다.

     

오늘 밤만이라도 이 아이가 편히 잠들 수 있도록 해 주세요. 다음 날의 일은 제가 맡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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