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경 님은 분노가 많은 사람입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에 기인한 공포와 노이로제 증상은 시간이 지나 분노로 나타나지요. 오랫동안 아버지에게 품었던 분노는 애석하게도 자신을 향해 표출됩니다. 수경 님 안에 있는 분노의 크기가 거대해요. 그래서 언제라도 자기 자신을 놓아버릴 수 있는 사람이에요. 그럴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스스로를 파괴해 버릴 수 있는 사람이죠. 분노는 타인이나 다른 대상, 이를테면 불편한 상황, 사회적 현상 등에도 나타납니다.
수경 님이 여자여서, 술을 많이 안 먹는 사람이어서 다행이에요.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이거나 남자의 경우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반사회적 행동이나 범죄 등 더 극단적인 상황을 만들 수 있어요. 이런 병을 아무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가족이나 남편 역시 이해하기 어려워요. 상담 때마다 남편이 많이 이해해 준다고 말하지만, 제가 보기에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남편은 그저 수경 님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뿐입니다. 이해하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가 어려워요.
수경 님은 본인이 하고자 하는 일에 태클이 걸리면 분노가 심해집니다. 참을 수 없죠. 어떻게든 자기 뜻대로 하긴 하지만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파괴하는 행동을 하게되므로 자제해야 합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목적을 관철해야 합니다. 앞으로 도피하고 싶을 때는 제게 말하세요. 그럴 수 있도록 적당한 약을 처방해 줄 겁니다. 일부러라도 도피해서 휴식을 취해주는 것이 필요해요. 일상이 불안에 찌들어 있습니다. 그저 안타깝습니다.”
정신과를 다니며 상담 기록을 메모장에 남겨두었다. 매번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오래된 메모장에서 내가 쓴 기록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분노가 많았던 나. 동의한다. 지인들은 의아해할 것이다. 순하고 착해 보이는 나에게 분노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일 테니.
아버지의 폭력성과 엄마가 씌어놓은 착한 아이 굴레는 내 마음을 병들게 했다. 참혹했던 폭력의 장면들은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았고, 아무도 살펴주지 않는 불안한 마음은 방치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에 이는 부정적 감정들을 혼자 삼키고 참아내야 했다. 표출되지 못한 감정들은 시간이 지난다고 옅어지거나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단단히 뭉쳐 가슴에 박혀버렸다.
결혼하며 부모님이 쳐 놓은 울타리를 벗어나게 되자, 오랜 기간 쌓인 감정의 퇴적물이 분노로서 모습을 드러냈다. 과거의 기억으로 마음이 힘든 날은 허공에 대고 욕을 했다. 생전 해보지도 않은 욕이 방언처럼 튀어나왔다. 종이에 아버지 이름을 써 놓고 글자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볼펜으로 난도질을 하며 분노를 터뜨리기도 했다.
분노의 대상은 남편이 되기도 했다. 남편이 작은 것 하나라도 나를 거스르면 감당할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시댁과 나의 의견이 대립할 때 남편은 조율하려 애썼지만, 나에게 필요한 건 조율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수용과 지지였다. 남편이 조금이라도 내 편에 서지 않으면, 버려진 기분이 들어 괴로웠다.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라고 단정 지었다. 커다란 외로움이 가슴 깊숙이 밀고 들어왔다.
그런 날에는 내 몸에 상처를 냈다. 용량을 초과하여 약을 먹고는 깊은 잠에 빠져들기도 했다. 남편에 대한 분노는 나 자신에게 상처 내는 걸로 표출되었다. 차라리 보통의 부부들처럼 화내거나 감정을 쏟아 내면 되는데 그럴 수 없었다. 분노 뒤에 숨어 있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남편이 나를 싫어하게 될까 봐, 내가 버림받게 될까 봐 겁이 났다. 그래서 나는 나를 때렸다. 아버지가 화나면 엄마를 때렸듯이, 나도 화가 나면 나를 때리며 아프게 했다. 살이 긁히고 멍이 들고 피를 보고 나야 흥분된 마음이 수그러들었다.
과거의 아픈 기억은 현재의 내 몸에 상처를 내고 있었다. 내가 낸 상처들을 보면서, ‘이렇게 된 건 부모님 때문이야.’ 억지 부리고 원망했다. 원망은 나를 지탱하기 위한 쉬운 해결책이었다. 사람과의 관계가 어그러졌을 때,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비겁하거나 잘못된 선택을 했을 때, 모든 일의 결과와 책임을 원망 하나로 끝낼 수 있었다. 내 불우한 환경 때문이라고. 부모님 때문이라고.
원망은 나를 지탱해주었지만 나아가게 하지는 못했다. 제자리에 머물러 자꾸만 뒤돌아보게 했다. 앞으로 나아가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이를 키우면서부터였다. 엄마가 되어 삶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지자 원망이 지닌 불순함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미 지난 시간이 현재와 미래의 우리 시간을 갉아먹고 있었다. 퍼뜩 정신이 들었다. 내가 키운 원망을 아이에게 물려줄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