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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관 스님의 아픈 질문

수많은 공고 중에서 나는 전등사를 선택했다.

나는 강화도를 중심으로 관광업을 하고 싶었다.

강화도엔 정말 많은 관광자원이 있는 곳이었고,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전등사는 강화도의 대표적인 역사적 공간이기에

이보다 더 좋은 장소는 없었다.

그리고 마침 템플스테이 직원을 뽑고 있었다.


'이건 운명이야!'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이력서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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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면접을 보러 전등사에 갔다.

내부 사정으로 템플스테이 직원이 아닌 종무소 직원이었지만

나는 상관없었다.


전등사는 주말이라 관광객들이 많았다.

예전 같았으면 나도 그냥 이들 중 한 명이었을 텐데,

지금 나는 관광객이 아니라 ‘면접자’로 이곳에 왔다.

기분이 진짜 묘했다.


‘절에 면접을 보러 오다니…’


수많은 관광객 속에서 나는 이 곳에 일하러 온다는 느낌이 낯설게 느껴졌다.

종무소에 도착하자 종무실장님께서 회의실로 안내해 주셨다.


실장님이 안내 해주신 회의실은 종무소 건물에 위치해있었다.

나는 회의실 안쪽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고,

잠시 뒤에 회의실 문이 열리고 종무실장님이 들어오셨다.


‘스님이 오시면 면접 시작하겠습니다.’


순간 깜짝 놀랐다.

나는 실장님과 실무자들과 면접을 볼 줄 알았는데 예상하지 못한 스님이 들어오신다고 해서 놀랐다.

잠시 뒤 스님 두분이 들어오셨다. 자리에 일어나 합장을 하고 인사 드렸다.

종무실장님이 스님을 소개해주셨는데 주지 스님과 교무 담당 스님이셨다.


"와… 스님과 면접을 보다니."


순간 어색해서 웃음이 나올 뻔했다.

스님들께 법문을 듣고 함께 수행은 해봤지만 면접자로 대하긴 처음이었다.

상황이 웃기기도 했고, 어떤 질문이 나올지 떨리기도 했다.


면접이 시작되었고 대부분의 질문은 종무실장님께서 하셨다.

그리고 가끔 교무 스님께서 몇 가지 질문을 하셨는데

주지 스님은 내내 말없이 내 이력서만 바라보셨다.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면접이 거의 끝날 무렵, 종무실장님이 주지 스님께 물었다.


"스님, 질문하실 것 없으세요?"


그제야 주지 스님께서 나를 빤히 보시더니,

조용히 입을 여셨다.


"다 좋은데, 오래 못할 것 같다."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네?"

"한 가지를 오래 못 하는 사람이야."


그 말은 나를 움찔 하게 만들었다.

왜냐면 나의 정곡을 찌르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금방 질려하는 성격이었다.

관심 가는 일이 생기면 누구보다 빠르게 몰입하지만,

어느 순간 열정이 식으면 미련 없이 떠났다.

회사도 많이 옮겼고,

친구들 사이에서는 "프로 이직러"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걸 스님이 단번에 알아보셨다.

나는 당황해서 얼떨결에 말했다.


"그런 점을 잘 알고 있어서, 삼칠일 기도를 해보는 등 노력을 했습니다."


삼칠일 기도는 21일 동안 108배를 올리는 수행이다.

목표를 정하고 중간에 포기하는 나를 바꿔보고 싶어서 도전했었다.

정말 쉽지 않았지만 해냈고

그 이후에도 작은 목표들을 끝까지 완수하는 연습을 해왔다.

그런 노력을 스님께 어필했다.


하지만 스님께서는 담담한 표정으로 내 말을 조용히 반박하셨다.

나는 애써 반박을 해보지만 변명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망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스님 앞에서 나를 변호하려 애썼지만,

말이 길어질수록 점점 내 본성이 더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면접이 끝나는 순간, 떨어지겠다는 직감이 들었다.


종무실장님은 잠시 밖에서 결과를 기다리라고 하셨다.

종무소 밖에 있는 나무의자에 앉아서 종무실장님의 호출을 기다렸다.

하늘은 맑았고, 바람은 선선했다.

하지만 머릿속과 마음은 복잡했다.


"내 본성이 발목을 잡는건가?"


그동안 나는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게 좋았다.

물론 실증을 잘 내는 성격이기도 했지만 다양한 것을 즐기고

그걸을 융합해 아이디어 내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이런 삶의 단점이 있는데 이룬게 없다는 것이었다.

다양한 경험을 했고, 새로운 것들을 배우는 과정은 늘 즐거웠다.

하지만… 그렇게 쌓은 것들 중, 끝까지 남아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하고 싶은 일은 많았고, 순간의 열정도 넘쳤지만

결국 완성하지 못한 채 떠나온 것들이 더 많았다.


그것에 대해서 고민하고 변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는데

주지스님께서 나의 치부를 건드셨던 것이다.

망연자실하며 벤치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결과를 기다렸다.


잠시 후, 종무실장님께서 나를 다시 불렀다.

나는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갔다.

주지스님과 교무스님은 나갈 채비를 하고 계셨다.

주지 스님은 나를 바라보시더니 짧게 말씀하셨다.


"열심히 해보세요."


스님의 말 한마디가 단순한 허락이 아니라,

변하고 싶었던 내 자신에게 기회를 주시는 것 같았다.


"네, 감사합니다!"


세속의 회사에서의 합격의 기쁨과 달랐다.

나를 꼭 변화시켜야겠다는 무거운 다짐이 함께했다.


그렇게, 나는 전등사와 인연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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