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1년 전의 내 모습이었다
지난 2일 모 중학교에서 시험감독관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원래는 본부요원으로 7시 20분까지 출근하였는데 시험감독관 두 분이 사정상 출석하지 않아서 자원해서 결국 교실에서 시험감독관으로 배치가 되었다.
전국 이 시간 교실분위기가 그러하듯이 중력을 이기지 못한 공기가 바닥에 바짝 엎드렸고 어느 것도 고개를 감히 들지 못한다. 들리는 것은 오직 책장 넘기는 소리뿐이다. 나는 마른 침조차 소리가 들리까봐 조심 그리고 또 조심하였다.
작년 이맘때 나 역시 그 자리에 있었다. 2년간 실패를 하고 시험 준비를 그만 두었는데, 어떤 사정으로 마지막 한 번만 응시하기로 마음 먹고 절치부심하던 때였다. 그때의 감정이 저 깊숙한 곳에서 솟구치더니 온몸이 굳어지고 가슴이 떨리고 진정되지 않았다 잠시 동안이었지만.
20명의 응시생 중 6명의 결시생. 남은 14명이 인생의 한판 승부를 앞두고 저마다 남은 에너지를 쥐어짜고 한 문제라도 건지려고 준비한 자료를 뚫어지듯 바라보고 있었다.
10시 시험이 시작되자 바닥에 엎드려 있던 공기는 불로 변한 듯 교실이 지글지글 익어가는 느낌이다. 이글거리는 응시자의 눈빛, 문제를 잡아먹으려는 듯한 연필과 샤프의 분주한 움직임은 건조한 날 바람을 타고 번지는 산불마냥 무서운 기세를 이어 나갔다.
시험감독관으로 나의 임무 중 하나는 응시표와 얼굴을 비교하고 답안지에 감독관 이름을 적는 것이었다. 나처럼 50대 수험생은 없었지만 40대 응시생은 2명이 있었는데 왠지 눈에 밟히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것도 이것에 해당될까? 이 두 분에게 찍신이 이 순간 강림하길 그리고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무너지지 않을 굳건한 마음을 가지길 마음속으로 소망했다.
100분 시간이 나에겐 시험감독관으로서 근무라서 직장인(?)답게 얼른 이 시간이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14명은 아마도 시간이 엿가락처럼 휘어져 몇 배로 늘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시험이 끝나니 피곤이 몰려왔다. 그냥 칠판 앞에서 서 있는 것뿐이었는데도 심적으로 압박을 받았나보다. 사실 가장 힘든 사람은 수험생일텐데 수고했다는 말조차 하지 못하고 답안지가 숫자가 정확한지 어떤 문제가 없었는지 확인하는 게 우선인 시험감독관의 일은 그렇게 마무리되고 있었다.
학교를 빠져나가는 사람 속에 비로써 친구와 이야기하는 사람, 가족이 나와 기다리는 사람, 전화로 이야기하는 사람, 묵묵히 갈 곳을 가는 사람. 작년 저 자리에 나도 있었다. 50세 나이를 보고 살짝 놀란 시험감독관의 모습과 내가 지금 화장실을 가도 되냐고 물으니 ‘선생님, 어서 가세요’ 나를 선생님이라 호칭하는 말을 듣고 적잖이 당황한 나를 떠올렸다.
지금은 국가공무원의 일원으로 공무를 한지 겨우 몇 달, 이른바 ‘응애 공무원’이다. 아직도 많은 것이 낯설고 배울 것도 많은 신규 공무원이 바로 나다. 50대가 되어 새로이 느낀 점과 뒤늦게 50세에 신규 공무원이 느낀 점을 여러분께 알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