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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숙 Aug 20. 2024

붉은 가슴이 뛴다면 너무
행복할 텐데...

어느 겨울날 역시 눈이 그치자마자 미친 듯이 후다닥 둘레길로 걸어갔다. 가슴이 후련해지고 날아갈 것 같은 느낌은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눈밭을 걸을 때 발길 아래에서 뽀드득 거리는 소리와 눈의 보드라운 느낌이 동심을 자극할 때마다 마음이 가벼워지는 나를 발견한다. 개구쟁이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욕구가 ‘스멀스멀’ 기어올라 온다. 

등산 스틱을 이리저리 휘졌으며 콧노래 부르며 둘레길 초입에 다다랐을 때 누군가 만들어 놓은 너무나 예쁜 눈사람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마도 이 눈사람을 만든 사람은 마음이 참 따뜻하고 온화한 사람일 것 같았다. 한참 동안 그 눈사람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바라보았다. 이리저리 사진도 찍고 뭔가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 하고 생각하던 순간 난 그 눈사람에게 생명을 선사하고 싶었다. 신이 가진 영역에 내가 끼어들어서 무엇인가를 해보겠다는 의지가 불타올랐다. 가슴이 펄떡 이는 삶이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의 생명을 주고 싶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팥배나무 열매가 이리저리 떨어져 있었고 마른 나뭇잎들과 관목의 마른 가지들이 뒹굴고 있었다. 특히 팥배나무의 열매는 흰 눈 속에서 붉은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 마치 붉은 혈액이 응축되어 있는 생명의 씨앗처럼 보였다. 에너지가 가득 차 있는 생명의 열매처럼 여겨졌다.

마법처럼 무엇인가 갑자기 예고 없이 부지불식간에 “확” 하고 그 눈사람에게 발생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 생각과 염원으로 눈사람에게 붉은 심장을 선사하는 신성한 마음으로 가슴에 달아주었다. 정말로 눈사람이 눈을 뜨고 몸을 움직이고 입으로 따뜻한 입김을 내쉬길 간절히 기원했다. 

 

심장아 뛰어라 … 뛰어라…. 숨 쉬어라. 눈사람아!  


                                  팥배나무 열매를 가슴에 달아 주었습니다. 심장아 뛰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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