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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MAGE Sep 18. 2024

스무 살, 베이스 기타를 배우기 시작하다

베이스 기타? 왜 하필 나야?



공대에 입학했다. 이공계 기피현상이 사회적 문제였던 시절이었다. 나도 공대 가고 싶던 건 아니었다. 성적에 맞춰 고르다가 화학공학과를 택했다.


공대 아름이.


어디 가서 공대 다닌다고 하면 "오 아름이~~"라 반응하던 시절. 우리 과는 정원 100명 중 20명 정도가 여학생이었다.


1학기가 끝나가던 어느 날이었다.


"우리 밴드 결성하려고 하는데, 너 베이스 기타 안 할래?"


같은 반 남학생 두 명이 결의에 찬 얼굴로 다가왔다. 그리 친한 사이들은 아니었는데..

한 명은 드럼을 칠 거고 한 명은 퍼스트기타 맡을 거란다. 남자 보컬도 있고 세컨드 기타도 정해졌단다.


"뭐? 갑자기 웬 밴드야?ㅋㅋㅋ 베이스 기타? 

근데 왜 하필 나야?"

"다 남자니까 여학생 한 명 같이 하면 좋을 거 같아서."

"근데 다른 여자애들도 많은데 왜 나한테 물어보냐고."

" 베이스를 제일 잘 들고 있을 것 같아서."


???


아름이 대접은커녕 여자 취급도 못받.. 아 여자 취급은 받았구나!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건반 하자고 하면 쉽게 합류했었을지도 모르겠다.

밴드라니... 베이스라니..




딱히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노래 듣는 걸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아는 노래도 별로 없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밴드에 대한 로망이 있지 않을까. 무대 위에서 공연, 그리고 환호하는 관객들!

나는 사람의 이목을 즐기는 편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마음이 끌렸다. 집에 돌아오는 한 시간 내내 머릿속에서 밴드와 베이스가 떠나가질 않았다.


내가 하고 싶다고 무조건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못했다. 아직은 부모님의 허락이 필요했다. 갓 성인이 되긴 했지만 일단 기타를 사야 하니까. 학원비도 필요할 것이고.


무엇보다 우리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었다. 아빠는 장로님, 엄마는 권사님. 그런 분위기라 그런지 나도 자연스레 가요는 별로 듣지 않았다. 내가 밴드를 하고, 소위 '세상노래'를 한다는 과연 부모님이 탐탁해하실까?

반대하실 게 뻔하다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와 엄마한테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학과 친구들이 밴드를 만드는데 나보고 베이스 해보지 않겠냐고~ 하하 웃기지~

근데 그게 내가 베이스 잘 들고 있을 거 같아서 물어본 거래~ 하하~ 

어떻게 생각해? 해도 될 거 같아?"


된다고 할걸 알면서 슬쩍 물어보는 거였다.

어색한 웃음까지 섞어가면서.


"오 그래? 한번 해봐~"


?????

별로 고민도 안 하고 바로 승낙??


"그럼 기타를 사야 하는데...?"


아빠랑 통화를 하고 이리저리 알아보시더니

동네 악기 판매점에 중고 기타가 있다고 그거 사 오면 될 거란다. 2003년 당시 30만 원 정도 했던 걸로 기억한다. 


야마하 브랜드 하얀 베이스 기타였다.



모든 과정이 충격 그 잡채였다.

친구들에게 제안을 받고 기타를 사고 학원을 등록하기까지 일주일이 안 걸렸다.

(스마트폰, 유튜브 이런 거 없던  시절이었는데 알음알음 다 하게 된다는 게 신기하다.)


그렇게 나는 학교 앞에 있던 드럼 기타 학원에서 처음 베이스 소리를 내보게 되었다.


"둥~ 둥~ 둥~"




달 전 엄마를 인터뷰 적이 있었다. 나도 아이를 키워보니 내 가치관에 어긋나는 일을 허락한다는 게 쉽지 않더라는 걸 느꼈다. 그래서 궁금했다. 엄마는 당시 무슨 생각이셨던 건지.


(카톡 전문을 그대로 옮깁니다)


Q(딸) : 딸이 대학 가더니 밴드에다가 베이스까지 한다고 했을 때 반대했을 것 같았는데 의외로 찬성하고 악기도 구해주셨습니다. 당시 어떤 생각을 하셨었는지?(왜 찬성하셨나? 무슨 기대를 하셨던 건가? 등등)


A(엄마) : 결론적으로 말하면 딸에 대한 신뢰감 때문이었지.

너는 어렸을 때부터 성실하고, 무엇이든지 최선을 다하고, 하는 짓(?)마다 예쁘고, 돌아보면 한 번도 내게 실망감이나 염려를 준 적이 없었던 것 같아. 그냥 네 존재 자체로 내겐 큰 기쁨이었어. 그러니 네가 무엇을 하든지 반대할 이유도 없고, 그냥 믿어주고 응원해 주고 싶었던 거지.

 

피아노를 쳤으니 베이스 기타를 하는 것은 어려움이 없을 거고, 잘 해내겠구나 생각하며 너의 또 다른 모습에 대한 기대감과 호기심으로 가득 찼었어. 그리고 지금은 세상 노래를 연주하지만 언젠가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쓰임 받게 되겠구나 하는 믿음도 있었지.


사실 그런 밴드 같은 데서가 아니면 베이스기타를 배울 기회도, 연습을 쌓을 기회도 없잖아. 그러니까 하나님이 저런 방법으로 열심히 연습을 시키시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감사했어.


하나님의 허락하심은 언제나 최선임을 믿었는데, 하나님은 역시 그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셨으니 하나님께 감사! 감사!



(역시 독실한 기독교 집안, 권사님 다우시다^^)


 

친구들의 기대에 부응할 만큼 나는 베이스를 아주 잘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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