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지하철역 앞에 기타 드럼 학원이 있었다. 밴드를 함께 하기로 한 친구들과 단체로 등록했다. 세션 4명 중 퍼스트 기타를 맡은 한 명만 빼고 악기를 다 처음 해보는 상황이었다.
베이스 기타 선생님을 처음 만났다. 왜소한 체격에 개구진 얼굴을 하고 있으셨다. 낯설어하는 나와 달리 매번 활짝 웃으며 반갑게 맞아 주셨다.
엠프에 연결하고 손가락 잡는 기초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피아노를 배웠던 터라 코드와 같은 기본적인 내용을 알고 있으니 어렵지는 않았다. 베이스 기타는 통기타나 일렉기타에 비해 줄이 두껍다. 줄이 4개짜리인 4현을 기본적으로 사용하고, 전공자나 잘하는 사람들은 5현 베이스 기타를 연주한다.
손가락을 풀고 스케일 잡는 연습을 했다. 익숙해지니 리듬도 하나씩 하나씩 배워 나갔다. 한 달 정도 기초를 배우고 친구들과 같이 곡 하나를 정해 합주해 보기로 했다. 학원 가장 안쪽에 마련되어 있는 합주실에 모여 첫 연주를 해봤다. 엉망징창이다. 드럼은 혼자 빨라졌다 느려졌다, 기타는 영 리듬이 안 살고, 나도 손가락 놓치기 일쑤였다. 어쨌든 시작하면 반은 한 거다.(정신승리)
폼은 그럴싸함
바람이 아직 차가웠던 날, 친구들과 빙수집에 갔다. 밴드 이름을 정하고 공연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공대생 아니랄까 봐 다들 전공책에서 나오는 용어들을 읊어댔다. 케미스트리, 리엑션, 퀀텀, 메카니즘 등등. 모두가 마음에 들어 했던 이름이 '메카니즘(Mechanism)'이었다. 각 악기가 만나서 반응을 일으키고 어쩌고 저쩌고 - 그럴싸한 뜻까지 붙였다. (다 잊어버림)
그렇게 서울의 한 방수집에서 OO대학교 응용화학부 밴드 메카니즘이 창단되었다. 빙수 한 그릇 사이좋게 나누어 먹으며 시작된 메카니즘 1기, 지금은 22기 까마득한 후배들이 활동 중이다.
베이스 기타 선생님은 다소 4차원스러운 분이었다. 종종 적응하지 못하겠는 유머를 던지기도 했다. 기본 연주법을 가르쳐 주다가도 본인 흥에 취해 혼자 슬랩 하면서 막 달리기도 했다.
공연 준비할 때도 도움을 많이 받았다. 다음 해 은퇴공연까지 선생님과 준비하고 학원을 그만두게 되었다. 들어보니 비슷한 시기에 선생님도 학원을 그만두셨다고 했다. 그리고 방송계로 나갈 준비를 한다고 들었다. 겨울에 들어설 때쯤 선생님한테서 연락이 왔다. 대학로에서 공연을 하는데 한번 보러 오라는 이야기를 한다.
당시 '화니지니'라는 코미디언 콤비가 있었다. 오승환, 최현진 두 명의 가수 겸 개그맨 그룹이다. 폭소클럽과 코미디하우스에 출연하고, 대학로에서 정기 공연도 하고 있었다. 어떤 인연으로 이분들과 합세하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화니지니미니의 웃음이 있는 음악이야기'라는 타이틀로 공연을 했다. 2004년 겨울이었다.
화니지니 무대에 다소 깍두기로 낀 느낌이었지만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즐기는 모습이 여전히 기억에 남았다. 통기타에 맞춰 멋들어진 베이스기타 연주를 보여주었다. 역시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사부님! 춤부터 노래까지, 지하에 있던 학원 한구석에서 기타만 가르쳐 주고 있느라 얼마나 좀이 쑤셨을까 싶을 정도였다.
콘서트를 마지막으로 연락은 끊겼다. 나는 1년 해외에 다녀왔고, 그 사이에 선생님은 KBS 개그맨 특채에 합격했다고 들었다.
개그콘서트 '감수성'에서 초록색 옷을 입은 선생님을 일주일에 한 번씩 보곤 했다.
20대 초반의 기억들이다. 20년 가까이 지나왔다. 어떻게 지내시나 문득 궁금해 네이버로 찾아봤다. 생각했던 것보다 기사와 사진이 많이 보인다. 사진과 함께 뜬 기사 내용이 이상하다.
'이재명 저격 후 삭발' 개그맨 김OO
개그맨 김OO 국회의원 공천했다면 이겼을 것
나무위키에도 이름과 프로필을 올린 선생님은현재 유튜버와 디지털정당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역시나 평범하게 살 것 같지 않아 보이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