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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MAGE Oct 09. 2024

어머님 얘 데리고 1박 2일 다녀와도 돼요?

마음을 좀 더 열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



학생이 되고 가장 힘들었던 것은 술문화였다. 나는 종교적이 이유로 술을 마시지 않는다. 요즘 대학 문화가 조금 달라졌을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에 술자리에서 술을 거절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특히 뒤풀이에서 선배가 주는 술잔이나, 신입생 오티에서 교수님이 건네는 술잔은 그야말로 큰 산처럼 느껴졌다.


처음 몇 번 싫은 소리를 들었다. 상상되는 레퍼토리 그대로, "너만 교회 다니냐?", "예수님도 포도주 마셨다" 등등. 워낙 보수적인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어서 나도 꿋꿋이 버텼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술을 마시지 않는 아이로 받아들여졌다.  편이 되어줄 동지는 단 한 명도 없었다..ㅠ


과나 학교 내에 다양한 동아리가 있었지만, 술문화 때문에 쉽게 관심을 가지거나 가입하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교회에서 하는 일이 많아 기독교 동아리에도 별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기독교 동아리도 비슷하다고.) 다른 친구들이 학회나 중앙 동아리에 갈 때, 나는 그냥 과방에만 들락거렸다.


밴드동아리 창단은 나에게 신의 한 수였다. 내가 가장 윗 선배이기 때문에 동아리 뒤풀이나 이런저런 모임에서 아무도 나에게 술을 강요할 수 없었다. 물론 나 역시도 마시라고 부어주는 일은 하지 않았다. 가끔 탐탁지 않게 여기는 후배도 있었지만, 어쩌겠는가. 자연스레 술을 원치 않는 사람이 내 곁으로 모였다.




대학에서 처음 가본 엠티는 충격적이었다. 교회 수련회나 교회 친구들끼리만 몇 박 놀러 가본 적은 있지만 그런 모임은 처음이었다. 농활(농촌봉사활동)에서도 낮에 일하고 밤에는 술, 엠티를 가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학번 동기끼리 가는 엠티는 그나마 편했다. 다들 이해해 줬으니. 정신이 말짱한 데다 게임도 잘해서 분위기 망칠 일은 없었던 듯하다.(아닌가^^;;) 정리와 마무리는 내가 도맡아 했다. 어쨌든 나에게 대학 엠티는 굳이 멀리 가서 방 하나 잡고 밤새 술 마시기 위한 자리였다.


밴드 친구들이 첫 공연을 마치고 엠티를 가자고 다. 기타리스트의 고향인 진주로 정해졌다. 술 마시러 진주까지 가자는 것인가. 부모님 핑계를 대고 빠지려고 했다. 드러머 친구가 내 폰을 가져가더니 우리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저 같이 밴드에서 드럼 치는 OO입니다. 저희가 같이 엠티를 가려고 하는데 OO  데리고 가도 되나요?"


엄마도 안된다고 할 수 없었을 거다. 그렇게 무려 진주로 엠티를 다녀왔다. 예상대로 친구들은 밤새 술을 마시고 놀았다. 가무도 함께였다.



다음 해 후배들이 생기고 여름방학에 자연스레 안면도로 엠티를 떠났다. 밤새 술을 진탕 마셨다. (그래도 선배 대접받으며 음료수를 잔뜩 샀다.) 그렇게 마시고 논 다음 날 바닷가에도 갔다. 남자들이 득실거리는 밴드이니 나를 번쩍 들어 물속에 빠뜨릴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나는 물을 무서워하지만 특히나 바다를 싫어한다. 소금기의 찝찝함이 싫기 때문이다. 계곡 물이었으면 빠질 의향이 없지 않았겠지만, 바다는 사양하고 싶었다. 그럴 때는 비장의 카드가 하나 있다.


마법...ㅋㅋ


는 물에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둘러댔다. 조금 불편한 척하며 열심히 사진 찍어주고 짐을 지켜주겠노라고 했다. 

멀리서 보니 역시나 예상대로 여자 멤버들은 바닷물에 흠뻑 젖었다.

(잔머리 잘 쓴 나 칭찬해..ㅎㅎ)


잡혀가는 내 친구


나는 극 I이다. 그나마 사회생활하고, 나이가 들며 굴에 철판이 깔리니 좀 나아졌지만 당시에는 내성적 성향이 매우 심했다. 무대 사진을 봐도 (베이스 자리는 늘 구석이긴 하지만) 앵글에 잘 안 나오게 숨어 있었다. 객석은 잘 안쳐다 봤다. 밴드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후배들과 가까이 지내는 것도 사실 좀 어려웠다. 대학생활에서 친해지는 것의 반은 아마도 술이 해주는 것일 텐데, 이것도 걸림돌이었던 것 같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너무 얌전 떨지 말고 마음을 더 열어 더 즐겁게 활동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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