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다녀온 것도 아니면서 대학교를 6년 만에 졸업했다. 어쩌다 보니 한 학기 교환학생을 다녀왔다. 여름 졸업이 싫어서 한학기 더 다니며 여유 있게 취업 준비를 했고, 원하던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두 달간의 신입사원 교육과 본사 부서교육을 마친 후, 드디어 부서 배치를 받았다. 야심 차게 1 지망부터 3 지망까지 한 곳만 썼다. 다행히 내가 원했던 부서명이 적힌 이름표를 받았다.
그러나 전공이 화학공학인데 환경 관련 팀으로 배치된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신입사원이니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어버린) 사회생활이 시작되었다.
파트장님은 아침마다 몇몇 파트원들과 티타임을 가지곤 했다. 파트장님이 커피잔을 들고 탕비실에서 돌아올 때면, 모두가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거나 고개를 푹 숙이고 무언가를 쓰고 있다. 눈이 마주치면 바로 콜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자리를 툭툭 치며 "커피 한 잔 할까?" 하는 부름이 있었다. 이미 커피를 한잔 마셨지만 또 한 잔 타 들고 원형 테이블로 갔다.
그날 파트장님은 내 자소서를 읽으셨던 것 같았다.
"아니, 대학에서 밴드를 했다며?"
짧은 스토리를 더 짧게 말씀드렸다. 파트장님의 큰 목소리는 더 커졌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부서 전체로 퍼져나갔다.
며칠 후, 부서 2년 선배가 사내 메신저로 말을 걸어왔다. 내 이야기를 들었다며 멋지다고 운을 띄웠다. 선배 몇 명이 모여 합주를 해왔는데, 베이스 기타리스트가 파견을 가서 잠시 쉬고 있는 중이라 했다. 나보고 같이 하면 어떻겠냐고 물어왔다. 토요일 아침 8시에 교대역에 있는 합주실에서 모일 거라고 한다.
'토요일 아침마다 삼성역보다 먼 교대역으로 출근하라고요??ㅠㅠ'라고 생각만 했다.
손은 '네 좋아요~'라고 타이핑하고 있었다. 신입사원이니까.
3년 만에 다시 합주실에 가게 되었다. 베이스 기타 가방을 메고 또다시 지하철을 타게 될 줄이야.
2년 선배들이 드럼과 보컬을 맡고, 1년 선배 두 명이 일렉 기타를 연주했다. 우리는 한두 시간 함께 연습하고, 끝나면 다 같이 맥모닝을 먹으러 갔다. (합주실 대여비는 들었지만 맥모닝은 늘 공짜였다.) 집에 돌아와도 아직 여유 있는 오전이었다.
말이 그렇지, 일주일에 한 번 합주를 하려면 주중에 노래를 듣고 연습도 해야 했다. 신입사원인 만큼 누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대학생 시절보다 더 열심히 준비했던 것 같다. (사실 다른 선배들은 그렇게 연습하지 않았던 것 같지만, 나는 막내이기 때문에...)
점차 개인적인 사정이 생기며 매주 모이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도 서너 달 재밌게 합주했다. 특별한 목적은 없는, 단순한 취미 모임 정도였다.
그래서 그런가, 선배들이 한 명씩 지방으로 파견 가면서 모임은 자연스럽게 흐지부지 사라졌다. 언제 합주를 했었냐는 듯 다시 늦잠으로 시작하는 토요일이 되었다.
퇴사한 후 함께 프로젝트를 했던 선배들과는 계속 인연을 이어나가고 있는 반면, 개인적인 시간을 할애하며 만났던 선배들과는 연락이 끊겼다. 아마도 그 시간의 목적과 의미가 달랐던 것 같다. 밴드를 하면서 공연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면, 파견을 가더라도 어떻게든 모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더 끈끈한 동료애가 생기지 않았을까.
사적인 친분 덕분에 좀 더 수월하게 직장에 적응을 해나갈 수 있었다. 돌아보면 아쉬움도 크지만 참 감사하고 고마운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