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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잘 섞어드세요.

블루베리요거트스무디

by 다해 Mar 0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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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베리요거트스무디 한 잔. 가끔 참기 힘들 정도로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주문하고 기쁜 마음으로 음료를 기다렸다. 블루베리요거트스무디 한 잔 나왔습니다. 매대에 가서 두 눈을 의심했다. 설마, 아닐 거야. 다시 봐도 눈앞의 광경을 의심했다. 이건 라떼가 아니라 스무디다. 그런데 안 섞여있다고? 진짜? 진짜?? 맞다. 안 섞여있다.

하얀색과 보라색의 얼룩진 무늬가 참 예쁘다. 예쁜 건 인정한다. 그런데 안 섞여있다. 괜찮다. 섞으면 되지 뭐. 빨대를 넣어서 휘적거려 본다. 아래에 있는 블루베리시럽을 요거트스무디와 섞기 위해 여러 번 휘적거려 보지만 도무지 섞일 생각을 하지를 않는다. 아직 날이 추워서인지 손은 점점 시려오고 음료는 섞일 생각을 하질 않는다. 아래쪽의 보라색과 위쪽의 하얀색의 조화가 참 예쁘다.

섞기를 포기하고 그냥 입에 빨대를 문다. 나름 연보라 색으로 섞였다고 생각했는데 어림없었다. 이건 그냥 요거트 스무디이다. 빨대를 깊게 꽂아서 아래쪽의 시럽이랑 적당히 섞어서 먹어보려 하지만 잘 안 된다. 그냥 블루베리이거나 그냥 요거트스무디다. 귀찮다. 그냥 놔둬버린다. 나중에 스무디에 잘게 갈린 얼음이 모두 녹았을 때쯤에야 섞을 수 있는 걸까.

빨대로 위아래로 휘적거리며 요거트스무디와 블루베리를 섞는다. 아까와는 확실히 다른 빛을 띤다. 아까 연보라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착각했나 보다. 그냥 하얀색이었구나. 적어도 이 정도는 되어야 연보라 색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마셔보니 확실히 블루베리요거트스무디라 할 만하다. 물론 여전히 가장 위쪽은 하얀색이고, 가장 아래쪽은 보라색이다. 그래도 뭐, 이 정도면 충분하다.

테이크아웃 커피에 대한 사람들의 취향은 은근히 갈린다. 보기에 좋지만 직접 섞어서 먹어야 하는 음료와 그냥 단조롭지만 섞을 수고로움이 없는 음료 중 무엇을 택하겠는가. 예전에는 물어볼 것도 없이 다채롭고 예쁜 음료였다. 섞이면 오히려 싫어했다. 예쁘지 않지 않은가. 무조건 음료는 예뻐야 한다. 충분히 눈으로 즐긴 이후에 먹을 거다. 나의 미적인 즐거움을 빼앗지 말라는 파였지만 최근에는 완전히 바뀌었다. 미적인 것도 좋기는 하지만 맛이 가장 우선이다.

아인슈페너 같은 경우는 예외다. 애초에 아래에 커피가, 위쪽에는 크림이 얹어진 음료다. 위쪽의 크림을 맛보고, 두 번째 먹을 때에는 아래쪽의 커피까지 한 번에 맛보면 달달한 크림에 쌉싸름한 커피가 입안에서 섞이면서 최상의 맛을 만들어낸다. 맛있기 위해 층이 분리되어야 한다. 그런데 에이드, 스무디, 라떼의 경우는 다르다.

자몽에이드는 대체적으로 아래에 자몽청이 있고, 위쪽에 탄산수 혹은 사이다를 넣어준다. 그냥 마시면 아래쪽의 자몽청만 먹게 되어 너무 달고, 나중에는 탄산수만 남아서 심심하게 음료가 마무리된다. 그래서 음료를 건넬 때 꼭 당부를 건넨다. “충분히 섞어서 드세요.” 음료를 섞은 경력이 얼마나 되는가. 에이드를 섞는 일은 꽤 잘하는 편이다. 하다 보면 요령도 생긴다. 위쪽의 얼음을 빨대와 함께 푹 찔러 넣는다. 아래에 간 빨대를 얼음 옆 가장 아래쪽으로 넣어서 청을 최대한 많이 컵의 벽면을 통해 끌어올린다. 이 과정을 몇 번 반복하면 충분히 잘 섞인다.

스무디는 다르다. 얼음과 음료를 갈아버렸다. 액체와 잘게 갈 린 고체가 섞여있어서 섞기가 쉽지 않다. 입자가 다르다. 얼음을 제외하면 액체형태인 음료와는 완전히 다르다. 입자가 촘촘하게 있어서 딱 지나간 자리만 무언가 달라져있다. 마음 같아서는 믹서기에 음료를 통째로 다시 넣고 갈고 싶은 심정이다. 거리에 선 나에게 믹서기는 없으니 유일한 도구, 빨대로 여기저기를 휘적거릴 뿐이다. 충분히 섞어야 맛있는데 쉽지 않다.

충분히 잘 섞어서 먹어야 맛있을 텐데. 충분히 잘 섞기에 좋은 음료가 아니다. 스무디를 이렇게 받아보기는 처음이라. 다음번에 만약에 주문하게 된다면 꼭 모든 재료를 넣고 갈아달라고 해야지, 다짐한다. 충분히 섞인 음료도 충분히 예쁘다. 그래도 덕분에 블루베리요거트스무디의 여러 면을 보지 않았던가. 보기만 해도 맛있어 보이는 하얀색과 보라색의 예쁜 무늬부터 손이 시리도록 희석하는 과정까지. 다채로웠지만 두 번 하고 싶지는 않다. 다음번엔 내가 말씀드려야겠다. “충분히 잘 섞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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