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전환에 최고였다
나는 어릴 때부터 성별을 가르는 것을 싫어했다. 남자라면 이래야지, 여자라면 이래야지라고 하는 어른들의 말씀에 괜한 반항심이 생겨 그들이 말하는 남자애들처럼 굴려고 했다. 물론 낯 가리고 소심해서 골목대장이 되고 그런 건 아니었지만.(심지어 너무 조용해서인지 여성스럽다는 말을 줄곧 들어왔다) 아주 사소한 반항이었다. 치마를 싫어하고, 분홍색보다 파란색을 사랑하고, 힘쓰는 일이 있으면 남동생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려고 했다. 액세서리는 대보기만 해도 치를 떨었으며 엄마나 언니가 손톱을 칠해주면 싫다고 박박 닦아내었다. '남자'들처럼 굴려다 '여자'들이 하는 것을 싫어하게 되었다. 성별을 가르는 것을 싫어했지만 그 마음이 오히려 누구보다 성별을 나누게 된 것이다.
위에 나열한 일명 '여자 놀이'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피하게 되었다. 그중 특히 더 싫어하던 것은 액세서리와 손톱 칠하기였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무의식적으로 이런 것들은 나하고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우람한 내가 하기엔 너무 작고 예쁜 것들이라고 생각했고 그것들은 나하고 동 떨어진 세계의 것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점점 더 나이를 먹어가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낀 것은, 그런 취향들은 성별을 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들은 정말 취향일 뿐이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것들이다. 아주 가까운 예로 남편이 그렇다. 남편은 액세서리를 좋아하고 꾸미는 것을 좋아한다. 나보다 머리 손질에 능숙하고 본인에게 어울리는 것을 잘 파악하고 있다. 가끔 나에게 명품 가방 하나 사야 하지 않겠느냐고 먼저 제의하기도 한다. 가방에 큰 관심이 없어서 괜찮다고 할 때마다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 오히려 동동댄다. 그래서 더 잘 깨달았다. 남자 놀이, 여자 놀이 따위는 없다는 걸.
그러던 중에 문득 네일 아트에 관심이 갔다. 결혼을 위해 친구가 열심히 해준 네일 아트를 처음으로 손톱에 관심이 간 것이다. 그렇게 관심이 간 상태에서 마주한 레퍼런스는 내 심장을 떨리게 했고 그 이미지를 들고 샵에 방문하여 네일 아트를 받게 되었다.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마주한 내 손톱은 정갈하고 동글동글했다. 작은 조약돌 같았고 손톱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귀여웠다. 마음이 하늘로 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 기분 전환으로 손톱을 꾸민다는 게 이런 거구나, 했다. 기분 전환이 확실히 되는구나!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인 기분이었다. 편견에 가로막혀 있던 내 세계가 조금 더 넓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