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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추석에 올게. 그때 내가 있을까?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by 다온

2013년 9월 첫째 주.

아빠 병실에는 엄마가 계셨다. 아빠는 지난번 의사에게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말을 들으시고, 작게 품었던 희망을 놓으신 듯하다.


"집에 가서 전화번호 적어 놓은 노트 갖다 줘."

"더 필요한 건 없어?"

"......"


나는 노트와 아빠가 수백 번도 넘게 읽고 필사한 책

"아카바의 선물"을 챙겨 갔다. 엄마는 양쪽 가족들에게 연락을 취하셨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사의 말과는 별개로 아빠의 검사는 진행되었다. 암환자들은 일반 환자들이 없는 새벽 시간을 이용해서 검사를 한다고 엄마는 소식을 전해 주셨다.


아빠는 종종 복수를 빼러 다른 치료실에 다녀오셨고,

엄마는 목욕을 좋아하는 아빠를 위해 물수건으로 닦아주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하셨다.



그래도 자꾸 검사를 해본다는 건 치료방향을 잡기 위한 것 아닐까? 떨리는 마음으로 한줄기 희망을 가져본다. 집으로 내려와 현이를 돌보지만 온 정신이 아빠에게로 가 있다. 현이가 어려서 병원에 계속 있기 어려워 어쩔 수 없.




엄마에게 매일 전화를 걸어 아빠에 대해 묻는다.

그런데 엄마의 목소리가 이상하다.


"아빠는 좀 어때?"

"어떻긴, 아까 주치의 왔었어. 아직도 여기 계시냐고. 호스피스로 옮기라고."

"호스피스?"

"너네 아빠 이제 여기 있으면 안 된대. 여기는 더 급한 환자를 받아야 한대. 연계되어 있는 호스피스병원이 있으니 옮기라고 하대."


더 급한 환자라. 우리 아빠도 급한 환자인데, 이제는 아닌가? 진짜 살날이 얼마 안 남은 환자로 분류되었나?



의사의 말을 믿고 싶지 않았는데. 그래도 어떤 방법이 있지 않을까 했는데.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의사의 말이 이제야 와닿는 순간이다.




이틀 뒤 아빠는 호스피스 병원으로 옮겨졌다. 양가 가족들이 방문하여 인사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어떤 분은 찬양을 불러주시고, 어떤 분은 아빠 귀에 대고 좋은 곳으로 가라고, 나중에 만나자고 하며 이별을 준비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우리가 갔을 때 아빠는 냐며 반기셨지만 기운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모습이었다. 엄마는 우리가 준비한 식사는 전혀 손대지 않으셨고, 나가서도 식사를 하지도 않으셨다. 엄마를 닦달할 수도 어떻게 설득할 수도 없다.


아무리 호스피스 병원이라지만 건강한 사람이 들어와도 병날 것만 같은 그런 분위기. 낮인데도 어둡고 우울했다.

이제 우린 뭘 하면 되는 걸까?


병원에 있다가 남편, 현이와 친정집에 왔다. 아빠의 깡마른 모습이 아른거려 뭘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내일 우리는 집으로 내려간다. 엄마는 우선 가라고 하셨다. 이렇게 가도 되는 걸까.




어슴푸레 아침이 밝아온다. 일찍 병원 갈 준비를 하고 나섰다. 올해는 9월 둘째 주인 다음 주면 이른 추석이다. 아빠를 만나러 와야지. 인사하고 우선은 가자.


"아빠, 다음 주에 올게."

"그때 내가 있을까"

"있지. 그럼 어디 가게?."


집으로 내려오는 동안 '그때 내가 있을까'라는 아빠의 말씀이 계속 머리를 맴돈다. 집에 도착했는데 나는 다시 아빠에게로 가고 싶었다. 가야 할 것만 같았다. 현이는 시댁에 맡기자. 생각만 하고 있는 나에게 남편이 말한다.


"아버님께 다시 올라가야 하지 않아?."

남편은 내 마음을 읽은 걸까.

'가고 싶어.'



서둘러 기차표를 예매하고, 다시 수원으로 가자. 지금도 있나 모르겠지만 그때는 기차에 휴게실 같은 곳이 한 칸 정도 있어서 간식 파는 매점이 작게 있고, 코인노래방 부스도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그곳에서 창밖을 라봤다.


코인노래방에서는 신나는 노래를 부르며 까르르 웃는 소리가 연신 들려온다. 그 소리에 눈물이 불쑥 난다.


'뭐가 그리 재미있나요? 부럽네요. 그렇게 웃을 수 있는 그대들이. 난 불안해 미치겠어. 우리 아빠가 금방이라도 떠나실 것만 같거든. 세상에서 제일 좋은 우리 아빠가 많이 아프시거든. 어떻게 하지? 하나님, 어떻게 좀 해주세요.'




저녁 9시가 넘은 시간. 병실에 불쑥 다시 나타난 딸을 보고 엄마는 놀라신다.


"왜, 왔어?"

"오고 싶어서 왔어."

"현이는 어떻게 하고."

"이서방이 알아서 한대.'


아빠 침대 머리 쪽으로 가니 작은 창문이 열려 있다. 찬바람이 들어오는 것 같아서 닫으려고 했다.


"아빠, 창문 닫을까?"

"왜?"

"추운 것 같아서."

"난 괜찮은데, 너 추우면 닫아."


엄마를 간이침대에서 주무시게 하고 나는 아빠 옆에서 까무룩 잠이 들었다. 그 시간이 빠와의 지막 밤이란 걸 까맣게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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