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
끝도 없이 펼쳐진 놀이공원을 보고 플로피와 논은 절로 터져 나오는 탄성을 멈출 수가 없었다. 회전목마며 작은 롤러코스터 등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은 다 갖춘 놀이공원에서 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또래들이 신나게 놀이기구를 타고 있었다.
“이곳은 조금은 큰 아이들이 놀고 있는 곳이에요. 이곳 놀이기구들은 모두 그들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졌답니다. 현대에서 온 아이들은 실제 놀이기구와 비슷한 것을 상상하지만 … 저 쪽 잠깐 보실래요?”
3 삼신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용 같기도 하고 커다란 뱀 같기도 한 짐승을 아이 몇이 타며 하늘을 날고 있었다. 짐승은 하늘 높이 솟구쳐 구름 속으로 사라지더니 잠시 뒤 엄청난 속도로 거꾸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머리 위로 떨어지겠다는 생각에 논은 눈을 질끈 감았다.
“논, 뭐 하나?”
“겁쟁이 논, 눈떠라. 갔다.”
플로피의 면박에 꽉 감은 눈을 살짝 떠서 보니 어느새 아이들이 타고 있는 짐승은 다른 방향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웃으며 앞장선 3 삼신을 따라 논과 플로피도 앞으로 나갔다. 어느새 놀이공원은 편한 소파들이 가득 찬 실내 도서관으로 바뀌었다. 바닥에 엎드려 책을 읽는 아이들, 소파에 기대어 자는 아이들…그리고 천사가 읽어주는 책을 듣고 있는 아이들… 모두 나이도 다르고 책을 읽는 법도 제각각이었지만 논은 평화롭다고 생각했다. 도서관이 끝나자 야외놀이터가 나타났다. 미끄럼을 타는 아이, 그네를 타는 아이…그리고 엄마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걷는 아기… 응? 여기에 엄마가 있나? 하고 다시 살펴보니 엄마의 등뒤로 반짝이는 날개 같은 것이 보였다.
“여기 있는 어른들은 모두 천국에서 오신 말라크들입니다. 아이들이 행복했던 순간을 즐기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아이들은 현생에서 부모와 함께 했던 그 시간을 그대로 다시 느낀답니다. 이외에도 아이들의 소망에 따라서 각자 원하는 곳에서 하고 싶은 것들을 하지요.”
“현생에서 부모와 함께 했던 시간을 즐긴다면 부모를 그리워하지 않나요? 그건 아픔이 될 텐데요.”
논의 질문에 3 삼신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말을 이었다.
“말씀드렸던 것처럼 이 아이들은 생명을 잃으며 현생의 기억은 일단 지워진 상태지요. 다만 행복했던 순간순간에 대한 기억만 존재한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자신의 부모를 기억하고 기억이 돌아오면 그 전의 전생까지 한 번에 모든 기억이 돌아오며 환생준비를 하게 되는 거지요.”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바라보던 3 삼신이 말을 이었다.
“아이들이 즐거움에 웃을 때마다 영혼의 빛을 내뿜는답니다. 예전엔 그저 저 빛을 모아 쓰면 좋겠는데…라고 생각만 했었는데….”
3 삼신이 말을 하는 순간 그들은 3 환생궁의 한 연구실로 이동하였다. 연구실 안에는 동그란 구체들이 있었는데 그 안에는 밝은 파란빛과 초록빛등 각각 다른 색들이 담겨 있었다.
“이렇게 모을 수 있게 되었지요. 인간의 시간으로 350년 전쯤 전생에서 뛰어난 과학자셨던 분이 열 번의 환생을 마치고 천국으로 오시면서 그분의 도움으로 이렇게 빛을 모으게 됐지요. 아이들이 웃으며 방출되는 영혼의 빛들이 이 구체에 모이게 된답니다.”
그 순간 허공에서 보이지 않던 조그만 파란빛이 같은 색깔이 있는 구체 안으로 쏙 들어갔다.
“이 빛들을 비료로 쓰는 건가요?”
논의 질문의 3 삼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 네. 이렇게 모은 빛을 2 환생국에 가져가면 영혼이 환생을 할 때 비료로도 쓰고 1 환생국에서 건강한 영혼의 씨앗을 만드는데 양분으로 이용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생명의 씨앗에 쓰일 양분으로는 턱도 없이 부족한 양이어서 1 삼신국에서는 늘 맑은 영혼의 빛들이 더 필요했지요. 그런데….”
다시 한번 그들이 머무는 장소가 새로운 연구실로 바뀌었다.
연구실은 삼신과 논, 플로피가 머무는 장소와 유리벽안에 실험을 하고 있는 실험실로 나뉘었는데, 안쪽 실험실에는 조금 전의 연구실과 같은 구체들이 있고 그것들은 모두 유리관들로 연결되어 있었다. 모든 유리관들은 한 기계와 연결이 되어있고 기계 앞에는 두 명의 과학자가 한참 실험 중이었다.
“얼마 전에 인간계에서 획을 그은 과학자 한분이 마침내 열 번의 환생을 마치고 천국으로 오셨지요. 그렇게 두 과학자 분이 함께 영혼의 빛들을 증폭시키는 기계를 만드셨답니다. “
3 삼신이 말을 마치자 과학자 한 명이 기계의 조작버튼을 눌렀다. 각구체에 모여있던 빛들이 유리관을 통해 기계 속으로 들어가더니 잠시 후 기계와 연결된 유리병 안으로 투명하게 빛나는 빛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럼 저 투명한 빛이 바로 영혼의 씨앗에 쓰일 양분인 건가요?”
“네, 논님. 저 빛은 기존의 양분보다 열 배 이상 증폭된 에너지를 가지고 있지요. 이미 지난주에 1 삼신에게 소량 전달했고, 저 양분만으로 영혼의 씨앗을 만드는 연구에 들어갔답니다.
만드는 과정에서 두 배에서 세배정도 증폭된 에너지들이 있는데 이따 가실 때 가지고 가시면 됩니다. 환생국에서 자라는 영혼의 꽃들이 더욱더 건강하게 환생할 수 있도록 도와줄 거랍니다.”
논과 플로피는 기계를 좀 더 둘러본 후 3 삼신과 함께 다시 아이들이 놀고 있는 공원으로 이동하였다. 여기저기 자신만의 방법으로 노는 아이들 중에서 3 삼신은 알록달록한 돗자리를 깔고 소풍을 즐기고 있는 아이들 쪽으로 일행을 안내하였다. 논과 플로피와 3 삼신은 아이들 사이에 끼어서 김밥, 샌드위치 등 각종 도시락들을 먹으며 즐거운 점심시간을 보내고 식사 후 숲길을 산책하였다.
“이길로 쭉 가면 인간의 영혼들이 잠시 머무는 마을로 가진답니다. 숲을 구경하며 걷다 보면 금방이지요.”
“인간의 영혼들도 이쪽으로 산책을 오나요?”
“아닙니다. 이곳 환생국은 이미 죽음을 경험한 영혼들이 머무는 곳, 살아있는 인간은 경계에서 넘어올 수 없답니다. “
삼신과 논이 대화를 하며 천천히 걷는 사이 플로피는 신나게 숲길을 왔다 갔다 달렸다. 숲에 피는 식물들은 논이 머무는 환생국의 꽃들과는 달리 큰 것부터 작은 것, 시든 것부터 싱싱한 것까지 종류도 상태도 다양하였다. 길 양쪽에 빽빽하게 들어 찬 나무가 풍기는 싱그러운 나무 냄새, 바람이 불 때마다 향기로운 꽃냄새, 풀냄새 그리고 약간은 축축한 흙냄새가 어우러져 깊은 숲향기를 내뿜었다. 논은 잠시 눈을 감고 바람을 느끼며 천천히 걸었다.
“컹컹… 인간이다.”
플로피의 말에 눈을 떠보니 저 멀리 누군가 걷는 모습이 보였다.
“어…한… 인가요? 삼신님?”
“아… 그렇네요. 저쪽으로 가볼까요? 저쪽에서는 저희가 보이지 않으니까요.”
논과 3 삼신 그리고 플로피는 한쪽을 향해 걸어갔다. 플로피가 크게 짖었지만 한은 전혀 들리지 않는 듯 조용히 생각에 잠겨 걷고 있었다. 앞장선 플로피가 빽빽한 나무가 갑자기 끝나고 양쪽길가에 큰 바위 둘이 있는 부분을 지나치자 생각에 잠겼던 한이 깜짝 놀란 듯 고개를 들어 플로피를 바라봤다. 연이어 삼신과 논이 나타나자 밝게 웃으며 한이 다가왔다.
“어서 오세요. 산책 중이셨습니까?”
“반갑네, 자네도 산책 중이었나 보네. 여기 논과 플로피, 지난번에 만났었지?”
“네”
한은 논과 플로피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3 삼신 옆에서 천천히 걸어가는 한을 보며 논은 플로피에게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이곳에 오래 머무르고 있다는 것은 누군가 기다리며 인간의 몸을 보살피고 있다는 거야.’
저 사람을 보살피는 사람은 누구일까? 혹시 저 사람이 잃어버린 기억이라는 건 그 소중한 사람일까? 소중한 기억을 잃고 영혼만 이곳에 머무는 기분은 어떨까… 논은 전생의 기억들이 없이 존재하며 존재하지 않는다는 별칭을 가진 자신과 현생의 기억을 잃어버린 채 죽지도 않은 영혼이 환생국에 사는 한의 모습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어… 컹컹…. 거기 누구냐?”
그때 플로피 세 마리가 허공을 향해 짖기 시작했다. 플로피의 짖는 소리에 생각에서 빠져나온 논은 플로피가 짖고 있는 허공에 무언가 형상이 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어?... 어?”
허공에 뭔가 색이 입혀지더니 순간 한 여자의 형상이 나타났다.
“몸을 떠난 영혼입니다.”
한의 설명에 논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는 또렷해지지 않고 흐릿한 그 상태로 당황한 듯 여기저기를 살펴보다가 한의 얼굴을 마주친 순간 두 눈이 커지며 입을 달싹달싹거리더니 한걸음 앞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한의 얼굴을 다시 한번 보더니 말릴 새도 없이 한쪽으로 뛰어와 그를 끌어안았다.
“흑… 흑… 흑… 만났어… 마침내…”
당황한 한은 경직된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서있었다.
“보고 싶었어… 보고 싶었어… 이한 씨.. 그래… 죽어야 보는 거야. 내가 죽어야….”
흐느끼며 말을 하던 여자는 갑자기 말을 뚝 멈추더니 포옹을 풀고 한을 바라봤다.
“당신… 안 죽었잖아. 여기 어디야. 나…. 죽은 게 아니야? 여기 어디냐고…!”
사정없이 한을 잡고 흔드는 여자를 보고 논과 플로피가 나서려고 하자 3 삼신이 팔을 들어 그들을 막았다. 여자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한을 바라봤다. 한은 그런 여자를 바라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기는…. 영혼이 머무는… 그런데… 당신은 나를… 압니까?”
한의 말에 여자는 한을 잡고 있는 손을 툭 떨어뜨린 채 눈물만 흘리며 한을 바라보았다. 한도 그런 여자를 바라보는데 갑자기 잊혔던 기억들이 물밀듯이 쏟아졌다.
“사랑해… 이현 씨"
“이현 씨… 우리 결혼하면 아이는 넷 어때?”
“이제 진짜 결혼하는 거야? 우리… 사랑해. 이현 씨"
여자와 함께 행복했던 모습, 웃는 그녀의 얼굴, 사랑을 속삭이던 모습들…그리고 ….
“빠앙….”
경적소리와 함께 전조등을 깜박 깜박이며 다가오던 차와 그 앞의 그녀… 뛰어감과 동시에 ‘퍽'하는 소리와 함께 다가온 온몸의 충격이 순식간에 느껴졌다.
“한 님… 한 님?”
“컹~~~ 컹~~~~”
논의 부름과 플로피의 짖음에 귓가에 울리던 울음소리와 경적소리가 사라졌다. 한은 자신 앞의 여자가 다가와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는 것을 보고 자신이 울고 있음을 알았다. 그 순간… 한의 모습도 앞의 여자만큼은 아니지만 색이 옅어지며 흐릿해졌다.
“기억이 떠 오른 거지?”
논의 질문에 플로피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
한은 자신의 앞에 있는 여자에게 한 발짝 다가섰다.
“당신이…. 당신이… 여기…”
중얼거리던 한이 온몸으로 울부짖었다.
“당신이 여기 왜 있어. 여기 왜….”
여자를 잡고 온몸으로 흐느끼던 한은 여자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돌아가. 지금 돌아가야 해. 내 이름은 서이한…그리고 당신… 당신 이름을 잊지 마. 당신… 이름은…”
한은 기억이 나지 않는 듯 인상을 찡그리며 여자를 다그쳤다. 여자는 그런 한을 바라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니… 난 돌아가지 않아. 여기서 당신과 함께 할래…”
한은 고개를 세차게 젓고 여자의 손을 잡았다.
“기억해야 해. 소중한 걸 잃어버린 순간… 돌아가지 못해. 돌아가야 해… 나도 곧 갈게… 갈 수 있어. 당신… 이름 당신 이름… 을 기억하는 순간… 나도 갈 수 있어.”
한의 말에 여자가 입을 떼고 말을 하려던 순간 여자의 몸의 색이 조금 더 짙어지더니 깜박이며 사라졌다 다시 나타났다.
“안돼… 안돼… 깜박이면…. 당신… 당신.”
눈물을 뚝뚝 흘리며 한은 자신의 앞에 다시 나타난 여자를 꽉 안고는 삼신 앞으로 와 무릎을 꿇었다.
“도와주십시오. “
“인간의 삶에 관계할 수 없네.”
“도와주십시오.. 제발… 때가 되었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제가 돌아가도… 저 사람이 저 사람이 없다면…”
한은 흘리는 눈물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저 사람이 없다면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그러면 인간들을 위해 일하겠다는 약속도 지킬 수 없습니다.”
“자네… 나에게 거래를 하는 건가…. 자네는 일개 인간일 뿐… 감히…”
삼신의 말에 옆에서 듣고 있던 논이 재빨리 한의 옆으로 다가가더니 깊이 고개를 숙였다. 플로피도 논의 옆에서 납작하게 엎드렸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한의 흐느낌에 3 삼신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내쉬고는 앞의 여자를 바라봤다. 여자는 다시 한번 깜박이더니 진해졌던 색이 다시 흐려지기 시작했다. 무언가 계속 말을 하고 있지만 이제는 존재감이 흐려져 말이 전달되지도 않았다. 들리지 않는 것을 아는지 여자도 조용히 무릎을 꿇으며 삼신을 바라봤다. 삼신은 깊은 한숨을 한번 더 내쉬었다.
“딱 1분, 인간시간으로 1분이네. 직접적인 것은 절대 안 되네. 오직 흐름에 위배되지 않은 것만.”
말을 마친 삼신은 논과 플로피의 머리를 향해 손바닥을 쓸었다. 그 순간 논과 플로피의 모습이 사라졌다.
장례식장 일을 마친 희진은 병실로 돌아가지 않고 병원로비에 앉아 자신이 쓴 기사를 확인하였다. 병간호 때문에 기자라는 말이 부끄럽게 인터뷰 한번, 현장조사 한번 제대로 못한지가 오래되었다. 그래도 돈이 필요했기에 인터넷에 올라오는 기사를 보고 변경해서 기존 기사를 재작성해 올리는거나 티비프로그램을 요약해서 리뷰하거나 인스타그램이나 다른 소셜미디어의 정보를 옮겨서 재작성하는게 다지만 조회수에 따라 수익이 정해지기에 일하는 것에 비해 수익이 나쁘지 않았다. 다만…
‘쓰레기 기사. 또 이희진 기자네.’
‘역시 기레기는 이희진.’
‘ 이런 기사도 기사라고 쓰냐. 기자 맞음?’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오늘 이기자 족치러 가실 분?’
휴우… 오늘도 어김없는 악플에 희진은 한숨을 푹 내쉬고 주머니에서 낮에 받아 두었던 병원비 영수증을 꺼내봤다. 밤낮으로 일했지만 택도 없이 부족한 금액. 이번주 내로 완납을 하고 남편을 집으로 다시 옮겨야 하는데… 희진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안락사해야 는 거 아냐?...’
낮에 화장실에서 들었던 여자의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생명줄… 자신은 남편의 생명줄이었다. 자신이 놓는 순간… 남편은 떠날 것이다. 그저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남편을 이대로 버려야겠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안 해본 것은 아니었다. 이대로 영양성분을 넣어주지 않는다면, 이대로 관리를 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생각하고 그를 이틀정도 그대로 둔적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나빠진 남편의 상태를 보고 다시 응급실로 이동해 그를 또다시 살려놨다. 나는 할 수가 없다… 그의 손을 놓을 수가 없다. 희진은 고개를 젓고 거친 손으로 얼굴을 문뎄다.
편의점에서 소주를 한 병 사고, 원룸으로 돌아온 희진은 자신의 방 책상에 있는 빨랫줄을 가만히 바라봤다.
남편의 생명줄 인 나의 생명줄을 먼저 끊자고 결심한 그날 마트에 들러 제일 튼튼해 보이는 빨랫줄 하나를 사두었다. 계획하지 않고, 그저 오늘이 그날이구나… 느낄 때 조용히 가자고 생각하고 매일 아침, 그리고 저녁에 책상의 빨랫줄을 바라봤다. 벌써 며칠을 바라만 봤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빨랫줄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오늘은 참 좋았다. 남편의 상태도 좋았고, 병원의 잡일도 힘들지 않았으며 오늘은 상주 쪽에서 따로 챙겨준 돈도 있었다. 기사도 악플은 많았지만 조회수가 높았고, 통장의 잔액은 아직도 병원비에 비해 택도 없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반이상 모았다. 게다가 날씨도 더할 것 없이 화창했다. 그래 오늘이네…
희진은 사온 소주를 한병 째 들이마시고, 천장을 바라봤다. 그리고 빨랫줄을 걸고… 자신의 몸을 맡겼다. 바둥바둥 거리며 온몸은 죽음을 거부하지만 이한을 만난 영혼 희진은… 역시 오늘이네…라고 생각했다. 거친 움직임이 천천히 줄어들고 희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오는 그 순간 논과 플로피가 희진의 방에 나타났다.
천장에 떠서 바둥거리는 희진을 보고 논은 순간 움직임을 멈춘 채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런 논의 눈앞에 매일 아침잠에서 깰 무렵 바라본 꿈속의 여인이 보였다. 어둠 속에서 늘 흐느끼던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천장에 긴 줄을 매달고는 자신의 몸을 맡기려 했다. 논은 입만 뻐끔거리며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녀에게 한 발짝 다가섰다. 말려야는데… 안 되는데… 죽으면 안 되는데….
“논”
“논!!! 논!!! 컹”
‘컹' 하는 플로피의 외침과 함께 논의 눈앞에 다시 움직임이 줄어든 희진의 몸이 보였다.
“시간이 없다. 빨리 해봐라 논.”
논은 허공에 떠 있는 시간을 확인했다. 분침과 초침만 있는 시계는 벌써 1분 중 20초가 지나갔음을 알려줬다.
“간접적인 거… 간접적인 거… “
논은 발을 동동 구르며 방안을 여기저기 살피더니 플로피를 바라봤다.
“플로피, 너 짖는 거 인간에게 들리니?”
“인간에게? 안 되는….”
“된다. 짖으면 되나?”
가운데 머리의 대답을 막은 왼쪽머리의 표정을 보더니 다른 두 머리도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논의
‘짖어! 엄청 크게!라는 소리에 세 머리는 순간 커다란 하나의 머리를 갖은 개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컹… 컹...왈!!!"
몸을 바꾼 플로피의 짖음 소리는 온 집을 흔들듯이 컸다. 논은 재빨리 집안을 살펴봤다. 방은 현관문을 열면 바로 오른쪽에 부엌이 있고 두 명 겨우 누울 공간에 화장실이 다인 작은 원룸이었다. 논은 현관문으로 다가서 문의 잠금장치로 손을 내밀었다.
‘제발… 잡혀라… 제발'
조심히 손을 내민 논의 손에 차가운 금속이 잡혔다. 논은 잠금잠 치를 풀고 문의 손잡이를 돌리고 문을 열었다. 좀 더 문을 활짝 열려고 하자 논의 손이 문을 그대로 통과해서 스쳐 지나갔다. 논은 급하게 플로피를 불렀다.
“ 플로피, 더 크게.! 여기서”
“왈왈… 컹~컹~~~~”
크게 울부짖는 플로피의 목소리가 복도로 울려 퍼졌다.
제발 제발…. 논은 간절하게 기도했다. 제발 열어라… 제발…
“아놔…어떤 개새끼야…”
그 순간 옆에 방문이 열리며 말소리와 함께 남자가 나왔다. 남자의 다가오는 발소리에 플로피는 온몸을 다해 더욱 크게 짖었다.
허공의 초침이 58초를 지나 59초 60초가 됨과 동시에 플로피와 논은 다시 환생국의 인간마을 숲으로 돌아왔다.
“우우~~~”
돌아옴을 인식하지 못하고 짓는 플로피의 울음이 한 마리의 목소리에서 세 마리로 바뀌었다.
논은 재빨리 여자 영혼이 있던 곳을 살펴봤다. 여자영혼은 깜박임 없이 모습이 점점 흐릿해지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흑흑….”
계속 무릎을 꿇은 상태로 흐느끼던 한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여자가 있던 자리로 다가섰다.
“살아.. 나도 곧 갈게… 희… 진… 희진아…”
말을 마친 한의 모습이 다시 한번 흐려졌다. 한은 눈물을 닦고 자세를 바로 하더니 삼신을 향해 깊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고개를 든 순간 한의 모습 역시 사라졌다.
“돌아… 간 건가요?”
논의 질문에 3 삼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는요? 그 여자분은 살아 난 건가요?”
대답이 없는 삼신을 보고 논은 애가 탔다.
“살아난 거지요? 삼신님?”
삼신은 빙그레 미소 지었다.
그 미소를 보고 논과 플로피는 폴짝폴짝 뛰며 서로를 끌어안았다.
“둘은 만났을까?”
논은 돌아오는 구름 위에 앉아 아이들이 준 초콜릿을 먹으며 이야기했다.
“여자는 아마 살아났을 거야. 죽음을 접하기 전 몸과 영혼이 따로 있을 때 여기로 오거든. 깜박이기는 했지만 흐려지는 순간은 깜박임 없이 사라졌으니 죽지 않았을 거야. 한이야 뭐…10년을 버틴 몸이니 괜찮을 거야…”
“혼수상태 인간들이 소중한 기억을 잊으면 못 돌아 간뎄지?”
“응… 기억과 추억이 인간이 살아온 기록이자 그 자체니까.”
“나도 그럴까?...”
“응?”
“나 말랴… 직전 생에서 버림받은 기억만 돌아왔뎄잖아. 그런데 아까는 …. 나 죽음직전의 나를 본 거 같아…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전생이 다 기억났다거나.. 그 전의 삶들을 깨닫게 되거나 이런 게 아니거든… 나도 소중한 기억을 기억해야지만 다 기억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플로피 세 머리는 쓸쓸해 보이는 논의 얼굴을 보더니 논의 옆으로 옮겨와 머리를 논의 머리로 파고들었다. 겨드랑이로 파고드는 플로피의 머리에 논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결국 입에 있던 과자가 다 튀어나오도록 웃고는 더럽다고 피하는 플로피의 세 머리를 껴안고 깔깔깔 웃어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