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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봉

by SM Mar 28. 2025

대학 동기 중에 조희봉이라는 배우가 있다. 

같은 학번 동기가 200명이나 되기 때문에 이름과 얼굴이 매치되는 동기가 겨우 절반이나 될까 말까하다.  그 친구 역시 친분이 있다기 보다 이름과 얼굴 정도 아는 사이일 뿐이다. 그 친구와의 기억은 1학년 2학기 국어수업을 같이 들었는데 수업에 꽤 자주 빠졌던 기억 그리고 한 두번의 술자리에서 연극을 하듯 과장된 말투와 행동의 기억이 전부일 뿐이다. 

그 친구는 입학하자 마자 학교 연극반에 들어갔고 거기에 완전히 몰입해 있었고 말과 행동이 하나하나 무대에서 대사를 하는 것처럼 보였었다.  

또 실제 연극을 제대로 하기 위해 학교를 자퇴하고 연극영화과를 갈 것이라고 들은 적도 있다. (결론적으로 자퇴하지 않았고 졸업한 것으로 봐서 그 소식이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사실이었는데 마음을 접은 건지는 알 수 없다) 

그 때 나는 그 친구가 너무 부러웠다.

진작에 자기 스스로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찾았고 또 그걸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하고 또 거기에 일생을 바치겠다는 결정과 열정이 부러웠다. 그러면서 특별히 좋아하는 것도 없고 잘 하는 것도 없는 내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고3 입시 상담 때 미래가 불투명한 국문과 대신에 상경계열로 정하고 때마침 이미 우리 반에 서강대 경영학과 쓴 애가 둘이 있고 너는 수학성적이 괜찮으니 경제학과 쓰라는 담임선생님 제안에 나도 부모님도 대충 "뭐 그러죠"하고 지원해서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경제학은 어려웠고 재미도 없었다. 공부 자체가 재능이 없었다. 그렇다고 딱히 몰두해서 할 만한 취미가 있지도 않고 잘 한다고 내세울 만한 재주가 있는 것도 없었다. 

겨우겨우 대학교를 졸업하고 회사 생활을 하면서 가끔 나는 조희봉을 떠올렸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어린 나이에 자기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아서 하게 된 부러운 인물로 그를 가끔 상기했는데 어느날 엄정화 주연의 영화 '싱글즈'를 극장에서 보는데 그 친구가 조연으로 나오는거다. 신기했고 또 부러웠다. 자기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이제 돈벌이도 잘하게 되는구나 하고 부럽고 또 부러웠다. 

한동안 조희봉은 나에게 '자기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어린 나이에 찾았고 그걸 직업으로 까지 갖게 되어 성공한 그런 부러운 인물'이었고 이따금 주변에 자랑스레 소개하기도 했다. 

그러다 그게 정말 부러운 것인가 하는 작은 의심이 들기 시작한 것은 그로 부터 또 몇 년이 흐른 뒤다. 

어떤 계기로 정말 꾸준하게 오랜 시간 무언가를 좋아하고 몰두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아무리 좋아하는 어떤 것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기울기와 속도의 차이가 있을 뿐 흥미를 잃거나 애정을 잃거나 열정을 잃게 마련이고 그게 당연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특히 그런 일이 내 생계와 직결되어있다면 어느 순간에는 오히려 더 큰 부담과 의무감으로 소위 '꾸역꾸역' 그 일을 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짐작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마지못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때만 할 수 있는 일만이 내게 행복을 줄 수 있다는 그런 작은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 생각을 한 뒤로 나는 내가 즐거워하고 흥미있는 일과 생계와 관련된 일을 연결하고자 하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아니 더 철저히 분리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고 그런 생각들을 주변에도 말해주곤 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다시 조희봉을 떠올렸다. 그 친구는 연기가 그의 생계가 된 지금 그리고 시작한 지 벌써 수십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처음의 열정과 흥미를 가지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을까? 당연히 나는 알 수 없다. 어쩌면 그 친구는 지금도 대학 1학년 그 때 처럼 연기를 사랑하고 열정을 가지고 연기를 하고 있으며 생계는 그저 그에 따른 부록처럼 여기면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게 살고 있으면 좋겠다. 가끔 세상의 천편일률적인 흐름이나 전개와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특이한 사람들도 더러 있을 뿐 아니라 또 아주 가끔 어떤 것에 대한 애정은 변동이 있긴 하지만 결코 사라지거나 없어지지 않는 것도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나는 조희봉의 현재가 궁금하지만 더 이상 내가 가지지 못한 부러운 친구로 조희봉을 떠올리지는 않는다. 나는 결국 어떤 것이든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흥미와 애정을 잃고 시들해질 것을 잘 알게 되었고 늘 새롭게 나의 흥미와 애정을 채울 또 낯선 것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이제는 잘 알기 때문이다. 

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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