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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짱 Jun 14. 2022

 개구리 소년(하)

 개구리 소년

 


실종 11년 6개월 만인 2002년 9월 26일, 월드컵 열기가 가라앉을 즈음 내가 지방청 강력계 반장으로 있을 때  4구의 유골과 신발 5켤레가 대구시 달서구 용산동 성산고교 신축공사장 뒤편 500m 떨어진 와룡산 중턱에서 그렇게 애타게 찾고, 찾았던 개구리 소년들 유골이 발견되었다. 


와룡산에서 도토리를 줍던 한 시민이 유골을 발견하였고, 유골들이 한 곳에 엉켜 있었고, 현장에 고의로 만들어 놓은 구덩이의 흔적이 없는 점으로 보아 체온이 떨어져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경찰서장이 현장에서 주장을 했다가 유족들의 거센 항의에 발언을 취소했다. 


이때부터 개구리소년은 타살이 되어 버렸다.


수사 책임자인 경찰서장이 저체온사라고 했다가 “저체온사가 아니다”라고 했으니 타살밖에 없게 되었고 언론이나 학자등 모두가 타살에 초점을 맞춰서 갑론을박이 시작이 되었다. 


타살이라는 가정하에 각종 상상력이 동원되어 해괴망측한 말들이 나오게 된 것이다.


‘그때는 왜 말을 못하고 이제 와서 다른 말을 하느냐’라고 한다면  경찰서장인 수사 책임자가 타살이라는데 


말단 형사가 ‘타살이 아니고 저체온사로 보입니다’라고 항변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되어 유골이 발견된 뒤 또다시 수사본부가 차려졌지만 나는 경찰청에서 다른 사건 사건을 처리 한다고 유골 발굴 현장에 가보지 못하였고 나중에 지원 근무를 하게 되면서 사진으로 아이들 유골을 보게 되었다.


지휘부에서 타살이라고 결정을 하고 나서 나도 처음에는 타살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사진으로 본 두부에 생긴 상처는 여러 가지 형태였고, 깊이도 달라서 도구가 한 가지가 아니겠구나 했다. 


지휘부에서는 범행 도구를 찾는다고 수사요원들에게 범행에 사용 하였을 것으로 보이는 공구를 찾으라고 닦달을 하였다.  


성서공단, 3 공단, 검단공단 등 공구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업소나 공장수사를 하였고, 전국 경찰에 공조 수사를 의뢰하여 탐문을 실시하였지만 결국엔 찾지 못했다.


유족들은 당시 오전에 이슬비가 살짝 왔을 뿐이고 영상 5도였으며 5명중 4명이 태권도장에 다녔고, 평소 놀이터처럼 뛰어 다녔던 동네 뒷산에서 조난을 당해 죽었다는 게 말이 안 되기에 타살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사람은 죽어서도 말을 한다’는 범의학 팀은 오랜 세월이 지난 뒤의 부검이었지만 우철원 두개골 상흔이 25개로 범인에게 저항을 하다 본보기로 크게 희생을 당하였고, 나머지 2명은 모두 좌측 두개골에 강한 흉기로 당했으며 또 2명은 외상 흔적이 안 보이는데 이는 가장 마지막에 남아서 교살 당했다고 추측을 하고 있다.


유족이나 법의학 측면에서 본다면 그렇게 주장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현장에서 그런 비슷한 상황을 조사하거나 본적이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는가?


서울도 안가 본 사람이 이긴다고.. 


대구경찰청 강력과장을 역임하셨고, 대구 형사의 대부로 계셨던 김영규 전(前)총경은 현장을 둘러본 후 아이들은 저체온증에 의한 자연사라고 자신 있게 주장을 하고 계시며 당시 부검을 한 경북대학교 법의학팀은 두개골 손상 흔적을 근거로 아이들이 타살 되었다고 주장을 하고 있어 법정 다툼까지 가신 분이다.


나 역시 나중에 현장을 가보고 조금은 의심쩍은 면이 있었지만  감히 의사 표현을 못했고, 사진들을 보고 난후 수사를 하면 할 수록 저체온사가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 1명이 되었다.


그동안 국민들 정서로 인하여 입을 닫고 있던 전문가들은 이제라도 정상적인 판단을 했으면 한다.


여러 가지 가설로 각자의 주장을 하고 있지만 내가 저체온사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있는데 그중 하나를 소개 할까 한다.


물론 이 조그마한 사건이 전체를 덮을 수는 없지만 국민들이 모르는 저체온사에 대하여 설명을 한다면..


예전 내가 서부경찰서에 근무할 때 20대 중반의 남자가 밤늦게 술에 취하여 경찰서 정문에서 근무자인 전경에게 경찰서장을 만나겠다고 하는 것을 시간이 늦었고 또, 서장님은 퇴근을 하였다고 하는데 계속하여 소란을 피웠다.


입초근무자는 경찰서 정문 앞에서 행패를 부리고 있으니 안 되겠다 싶어 안내소 안에 근무하는 전경과 합세하여 억지로 정문에서 10여 미터 떨어진 담벼락까지 들어서 몰아낸 적이 있는데 그 이후로 비가 오고 3시간 뒤, 길가에 쓰러진 사람이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파출소 경찰관에게 발견되어 시립의료원으로 가는 중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당직을 하면서 도로상에서 사망을 한 변사사건을 처리하게 되어 다음날 부검을 하게 되었는데 부검한 결과 저체온사라는 부검의의 소견이 있었다.


당시 부검을 한 의사는 대구의료원(구 시립병원) 내과 과장을 하셨던 이 정0 박사셨는데 대구에서 발생하는 변사사건의 부검은 거의 도맡아서 하셨다.(경북대에 부검팀이 없었다)


최근에는 과학수사연구소 칠곡 분소에서 거의 실시하지만 부검이 많을 때는 경북대 병원 법의학 팀에서 하는 경우도 있다.


대구의료원 부검실에서 부검을 하면 이 박사님은 담당 형사들을 부검실 안으로 들어오게 하여(고약한 냄새가 나서 형사들이 안 들어가고  유리창 너머에서 관찰함) 사인이 무엇이며, 어떻게 일어난 것인지 상세하게 설명을 하면서 설명하는 부분을 적어서 수사 보고서에 기재를 하라고 하시던 분으로 법의학이라는 전문가들이 부족할 때 우리 형사들에게는 법의학 교관이시기도 했다.


그래서 당시 형사들은 독극물 투약, 질식사, 약물과다 복용, 액사, 급사, 익사, 실혈사, 유독가스 흡입등 의사 면허가 없을 뿐이지 사체를 보면 동네 의원의 의사들보다 더 정확하게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최고의 한의서 동의보감을 저술한 허준 선생이 스승 유의태(유이 태라 고도함)의 사체를 부검하며 사람의 장기를 파악 했듯이 무릇 명의는 많은 환자를 진료해야만 체질에 따른 처방을 한다고 했다.


이 박사님은 많은 사체를 부검하면서 터득한 지식을 우리 형사들에게 가르켜 수사에 긴히 사용하도록 해주신 분으로 지금도 존경하고 만나고 있어 그때 왜 참여를 하지 않았냐고 하면 그때는 이미 의료원에서 퇴직을 하였고 같이 보자고 한 사람이 없다고 하시면서 직접 보지 않아서 뭐라고 답을 해줄 수 없다고 하신다.


일반 시민들은 저체온사 일명 '동사'라고 하면 아주 기온이 낮아야만 저체온사가 오는 줄 아는데 여름 날씨에서도 저체온사는 생길 수 있다고 했다.  


어린아이들 몸에서 열이 나면 수건에 물을 적셔 닦아 주면 열이 내려가는 이치라고 보면 되고, 더운 여름날(에어콘이 없을 때)런닝셔츠에 물을 적셔 입고 선풍기 바람을 쐬며 잠을 자면 몸에 있는 열을 빼앗아 시원하게 잘 수 있는 원리와 같은 것이다.


평생 형사를 하면서 저체온사 변사 처리를 한 건 할까 말까 하는 정도인데 내가 저체온사 변사사건을 처리하면서 실무에서 터득한 예가 있었기에 이런 주장을 하게 된 것이다.


이 박사님에게 배운 지식에 의하면 저체온사 부검을 하게 되면 내부 장기에 특이한 반응(위 내벽에 좁쌀만 한 돌기 형성 등)들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저체온사에 대한 학술적 전개는 생략을 하기로 한다.


변사자는 담벼락으로 밀려난 후 구토를 하고 쓰러져 있다가 잠시 잠이 들었고 그곳에서 비를 맞고 오한이 들어 체온이 내려가면서 열 손실이 증가하여 사망에 이른 것이라고 했다.


추후 유족들의 진정에 의하여 당시 경찰서 정문 근무자들이 전역을 하였지만 폭행죄로 불구속 입건하여 재판을 받았는데 이 박사님이 폭행에 의한 사망이 아니고 저체온사에 의한 사망이라는 법정 증언까지 하였다.


개구리 소년들도 산에 올랐을 때 비가 내렸고(일기예보상 많은 비는 내리지 않았다고 하지만 곳에 따라 강, 약이 다를 수 있음) 바람이 불자 비, 바람을 피하려고 움푹 들어간 곳에 들어가 서로가 부둥켜안고 있다가 잠이 들었다고 보고, 입고 있던 운동복(추리닝)은 물을 잘 흡수하기도 하고 또, 잘빠지기도 하는 특성이 있다.


운동복이 젖어 있는 상태에서 잠이 들었다면 수분이 천천히 증발되며 체온을 내려가게 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경험측상에 나오는 것이라 하겠다. 


※ 최근에 와서 버니어 캘리퍼스가 범행 도구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고, 모 교수는 ‘굉장히 합리적인 추론’이라는 평가를 하고 있는데 학술적으로 라면 ‘어떤 비약적인 의견을 제시해도 용서가 되는가’라는 생각이 든다.(부산에서 서울로 가는 길은 수 없이 많이 있는것과 같다고 본다)


학자가 주장하는 것은 타당성이 있겠지만 또, 타당성이 있다고 해서 30년이 지난 일들을 증거도 없이 어느 누가 해결 한다고 볼 수 있겠는가? (어떻게 결론이 나더라도 해결이 된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 할 사항이다)


누구라도 의견을 제시하면 모든 것을 조사해야 하는가 하는 의심이 든다, 예전에도 유명대학 심리학자가 제시한 의견이 맞다고 맞장구 친 사람들은 어디 가셨는지?


상처는 일정하지 않았는데 도구가 사용되었다면 여러 가지 도구를 사용했어야 했고 누가? 왜? 여러 가지 도구를 가지고 산 중턱에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고, 입고 있던 운동복으로 목을 졸랐다고 하지만 가느다란 철사는 목을 졸라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다. 


느슨하며 두터운 것으로는 특히 운동복 같은 것으로는 천하장사의 힘이라면 몰라도 목을 졸라 생명을 끊을 수 없다.


유골의 형태로 보아 손이 묶여 있었을 것이라 추정을 했을 뿐이지 직접 묶여 있던 끈을 발견한 것은 아니었다.


또, 한 사람의 목을 조를 때 옆에 있던 어린아이들이 가만히 있었겠나?


여러 사람이 그랬다면 무슨 이유로 아이들을 그렇게 죽이겠나? 


사아코 패스 환자가 여러명 같이 있었는가?


유골 발견 시  토양 상태는 돌들이 겹겹이 쌓여 있었기에 비, 바람에 흘러내리다가 뽀쪽한 부분이 부식된 유골에 부딪친 게 아닌지 의심이 가는 부분이었다고 보는 견해다.


그 외에 여러 가지 이유가 더 있지만 세월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다시 논쟁을 일으키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본다.


그래서 지금도 유족들은 감식팀의 말대로 타살이라고 주장을 하고 있고 당시 수사를 했던 지휘부의 한분은 타살이 아닌 저체온사라고 주장을 하고 있다. 


당시 수거한 유골 일부는 유가족에게 전달하지 않았었고, 경북대 법의학 팀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감정서를 경찰에 보내지 않고 있다.


개구리 소년들이 사망하고 나서 너무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발견되었기 때문에 경북 대학교 부검의 팀(한분은 2021년 말에 별세하셨고 한분은 정년 퇴임하신 것으로 알고 있음)이 검안을 하고 학문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은 두부에 있는 상처였다고 볼 수 있고, 여타 옷이나 소지품들에 대한 감정은 따로 하는것이 따당하다고 보는 견해이다. 


이 사건을 미국 캘리포니아 범죄심리학 교수인 에릭 힉키 교수는 사이코패스의 범죄라고 주장하고 있다.


학자들의 주장은 학문적으로 항상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하는 것뿐이지 실무에서 전부 진실 일 수는 없다고 본다.


이후 수사는 진척이 없었고, 범인은 결국 밝혀지지 않았다. 


유골 발견 초기에는 대구지방경찰청 차장을 수사본부장으로 70여 명의 수사 인력이 가동됐으나, 공소시효 만료를 앞둔 2006년 3월에는 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1개 팀, 성서경찰서 강력팀 등 18명만이 사건을 맡았다.


 한편, 이때까지 살인사건의 공소시효는 15년으로 되어 있어서(현재는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 개구리소년 실종 사건은 2006년 3월 25일 공소시효가 만료되었다. 


이에 개구리소년 유족들은 2005년 말부터 기자회견 등을 통해 '공소시효 연장 및 폐지'를 촉구해 왔지만 공소시효 연장을 골자로 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이 사건의 시효 만료 전에 통과되지 못했다. 


발생 당시는 달서경찰서였으나 2005년에 성서경찰서가 신설이 되면서 개서 준비 요원이었던 나는 발생지역이 성서경찰서 관할이라 사건을 인계받았다.


관련 서류를 인계받았지만 다시 수사를 시작한 것은 아니었고 3개월 뒤 정식으로 발령을 받고 나니 당시 달서경찰서에서 전담반에 편성되어 수사를 하였던 형사가 팀장이 되어 전입을 오게 되어 그 팀장에게 


다시 전담반은 맡겨 기록 관리 및 검토 후 수사를 하라고 지시를 했다.


세월이 지난 기록을 보고 검토를 했지만 수사를 제기할 말한 특별한 제보나 증거가 없다 보니 국정 감사 시 국회의원들의 형식적인 질문에 그동안 수사한 내용을 설명하는 보고서 제출, 정도였다고 보면 된다.


2016. 1. 26. 성서경찰서 형사과장으로 부임을 하고 나서 미제사건을 확인하다가 다시 개구리소년 사건을 접하게 되었다.


기록이 성서경찰서  과학수사팀 옆 창고에  보관이 되어 있어 부임 후 기록을 살펴보았지만 새로운 증거나 제보 등 수사할 만한 자료가 없었고, 수사한 자료가 방대하여 처음부터 하나하나 살펴볼 여력이 없었다.


그러다가 언론이나 학자들이 보도나 연구대상이 된다며 협조를 요청하면 기록에 의하여 조금씩 답변을 할 뿐이었다.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 당시의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는 지형과 건물이고 주변 인물들도 흩어진 상태여서 그야말로 영원한 미제사건이라고 해야 될 것 같다.


현재 시점으로 볼 때 미흡한 수사가 있었다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너무 많은 헛소문과 제보에 수사 인력이 낭비가 되도록 한 지휘부의 판단에 미스가 있었고, 유골이 발견, 신고가 된 뒤에 법의학자들과 대구의료원 이 박사님과 같이 발굴에 참여했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비난을 면하며 하나의 의견으로 똑바른 결론을 내렸을 것이라 생각된다.


◆ 하늘만이 진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


원인을 확실히 밝히지 못하여 온갖 이야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지만 경찰이 1차적으로 책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살인이다.”


“살인이 아니고 저체온 사다.”


라는 논란은 아마 끝이 없을 것으로 판단이 되고 수사에 종사하였던 일원으로서 고생하고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듣지 못하고 원망의 대상이 되어 안타깝기만 하다.


30년이란 세월이 지나고 나니 이 사건이 발생하였을 당시 수사를 하였던 형사는 인제 거의 퇴직을 했다고 보면 되고 유골이 발견되고 수사에 참여한 형사들은 이제 고참들이 되어 퇴직을 했거나 준비를 하고 있다.


당시 수사 지휘부에 있었던 간부나 수사 실무자들은(처음 신고 때와 유골 발견시 같이 수사한 형사는 몇 명이 안 되고 현직에는 아무도 없음)워낙 언론이나 여론에서 세차게 살인으로 밀어부쳐 하고 싶은 말 한마디 못하고 떠났으며 지금도 논란의 중심에 서고 싶지 않아 기자의 인터뷰에 응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언론사에서는 시민의 제보라는 미명하에 사실 확인도 안하고 이치에 맞지도 않는 것들을 이슈가 된다며 무분별하게 보도를 하는데 이를 자제 해줬으면 한다.


대구 경찰청 미제 수사팀에서 수사를 하고 있다고 하지만 지금도 성서경찰서 창고에는 소년들에 대한 수사 기록이 보관되고 있다.


수사에 참여 했던 어느 누구를 폄하 하거나 잘못을 따질려고 하는게 아니고 워낙 세간에 말이 떠 돌고 있어 의견을 제시 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어린이들이 실종된 3. 26일이면 발견하였던 장소에 경찰서장 명의의 꽃바구니를 보내고 형사들이 참석하여 영혼을 위로하고 있다.


타살이던 아니던 당사자들인 유족들 심정이야 어떻게 말로 표현을 할 수 있겠나 만은 다시 한번 짧디 짧은 생을 마친 소년들의 극락왕생을 빌어본다.



#개구리 소년 #앵벌이  #저체온사 #미제사건  #도뇽룡  # 공소시효 #형사 #허위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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