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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짱 Jul 12. 2022

국보급 골동품 下

삼국시대 골동품

물건을 확보한다고 돈을 많이 주웠 상하다는 말을 듣고 찜찜해서 대구 박물관으로 물건을 가져가서 학예사에게 보여  뒤 연락이 왔는데

국보급 골동품이 아니라 ‘모조품’이라는 것이었다.


그래도 이 업계에서는 알아주는 도굴꾼이 민간인도 아니고  업으로 골동품을 취급하는  나한테 사기를 쳤다고 생각을 하니 울화가 치밀고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것이었다고 했다.


영산강을 옆에 두고 있는 나주와 함평 등은 삼국시대와 그전 시대부터 부락이 형성되었던 곳으로 골동품이 많이 나오는 지역이기도 했고 그 여파로 아직도 그 주변에는 골동품 가게들이 있기도 하다.


도굴꾼들은 주로 겨울에 작업을 한다.


탐침 봉 같은 것을 가지고 예전에 번성하였던 고도(古都)를 다니며 산세를 살피고 나서 탐침 봉으로 예상지점에 찔러보고 능이 있었다고 생각되면 움막을 쳐놓고 비밀리에 도굴 작업을 하는데, 장마철에 도굴을 하면 습기가 많고 무너지기에 도굴이 어려워 땅이 얼어붙는 겨울에 해야 안전사고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땅을 파고 들어 갈 때는 위에서 바로 파고 들어가는 방법과 옆에서 석탄갱도 같이 나무로 축을 쌓아 파고 들어가는 방법이 있는데 목표물 주변과 지질에 따라 다르다고 했다.


한 번이라도 능이 있던 땅은 아무리 세월이 오래가도 탐침봉으로 찌르면 “쑥” 들어간다고 하는데 이는 전문가들의 소견이고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힘이 좋은 한국인들을 일꾼으로 고용하여 많은 골동품들을 도굴하여 가져 갔다고 하며 일제가 패망 후 돌아가고 난 다음 고용되었던 사람들이 일본인들에게 배운 기술로 고분을 돌며 도굴을 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지금은 도굴을 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졌지만 남아 있다고 해도 나이가 많거나 그들의 후예들이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


또 모든 골동품 거래는 사진으로 시작한다고 한다.


비싸고 관리가 어려운 물건들을 가지고 다니면 훼손도 문제고 또 도난의 염려가 있어 대상물을 사진으로 여러 장 찍어 보여준 후 가격이 형성되고 살 의향이 있을 때 실물을 가지고 나오기 때문에 거의 사진으로 관찰한다고 보면 되고 요사이는 동영상으로 보여 준다고 한다.


박물관에서 모조품이라고 했다는 소리를 듣고 수사를 착수하면서 우선 조 사장에게 인수증을 써주고 물건을 받아 왔다.


우리는 규모가 조금 더 큰 경주 국립 박물관에 정식으로 공문과 함께 골동품의 진위여부를 의뢰했는데 일주일이 지난 뒤 역시 모조품이라는 통보를 받고 조 사장에게 연락을 취했다.


“조 사장님!”

“김 형사님! 어찌 되었나요?”


“말씀드리기가 거북 한데 .. 가짜랍니다”

“경주 박물관에서도 가짜라고 합디까?”


“가짜라며 공문으로 접수했습니다.”

“우리보다 공부를 많이 한 박사들이 가짜라고 하면 맞겠지요. 아! 김 모 그놈 돈이 일, 이백도 아니고 많은데 우짜노 ..”


“김 모 씨 집은 어디인가요?”

“집은 모르고 연락처는 알고 있습니다.”


 “말해 보이소.”

“휴대폰에 입력해 둔 연락처가 있는데..”


휴대폰을 보고 알려준 번호로 수사를 시작했다.


주소를 파악한 후 형사 3명을 대동하고 주소지인 동구 신천4동 주택으로 갔으나 없어서 이웃집에 문의를 해보니 보름 전에 이사를 갔다는 것이었다.


거금을 챙겼으니 언젠가 들통이 날것을 대비하여 거처를 옮긴 것이었다.


나쁜 짓을 한 범인들은 항상 도주를 하고 이들을 잡으려고 하는 형사들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간단하게 검거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형사들의 수사 기법을 상세하게 전할 수는 없지만 여러 가지 수사로 의심이 가는 곳을 특정하게 되었고, 주변 잠복을 하다가 이틀이 지난 시점에 어딘가 다녀오는 김 모 씨를 만촌동 주택가에서 검거를 하고 주거지에 대한 수색을 했다.


이사를 한지 얼마 되지 않아 가재도구 정리가 잘 안 되어 있었지만 의롱 안쪽 깊숙한 곳 오동나무 안에 진품같이 만들어 놓은 국보급으로 보이는 금동반가사유상 등 13점이 있어 김 모에게 물어보니 처음에는 말을 안 하며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모조품이라고 하여 증거물로 압수를 했다.


사무실에 데려다 놓고 먼저 조 사장에게 진품이라 사기 친 태환 귀걸이 구입처를 추궁하자 그냥 자신이 나주에서 도굴한 것이라고 주장을 하여 국립박물관에서 온 증서를 보이며 추궁을 했다.


“어이! 봐요 김 00 씨! 당신은 도굴을 하며 세월을 보냈지만 나는 나쁜 놈들 잡으면서 세월을 보냈는데 한번 해볼 거요?”

“....”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욕을 못하겠고 함부로 힘을 쓸 수도 없어 속에서 불이 났다.


쌍욕을 하며 다구쳐도 되겠지만 ...


“김 00 씨! 어차피 들통이 났고, 피해자가 알고 있는데 자꾸 거짖말 하며 넘어 간다고 될 일이 아니잖아요."

“....”


“우리는 사건을 해결했으니 되었고, 피해를 본 조 사장만 열불 나게 생겼네.. 빨리 진술을 하고 조 사장에게 조금이라도 용서를 받아야 될 거 아닙니까?”

“....”


“조금 있으면 조 사장이 올 것인데 알아서 하세요. 조 사장 오면 조금이라도 도와주려고 했는데 안 되겠네..”

“형사님! 조 사장 오면 말 좀 잘해주세요.”


“당신은 우리한테 협조를 안 하는데 우리는 미쳤다고 당신 도와줍니까?”

“내가 어떻게 하면 됩니까?”


“사실대로 말하는게 우리를 도와 주는 것입니다. 먼저 조 사장 가게에  같이 간 사람은 누구입니까?”

“일  할 때 저를 도와주는 보조인데 이 00입니다.”


“그 사람도 당신이 가짜 판다는 것 알고 있었지요?”

“같이 일을 다니다 보니..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어디 있어요?”

“집은 대명동인데 아마 집에 있을 것입니다.”


“주소를 말해보세요?”

“집 주소는 모르고 대명동 카토릭 병원 근방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같이 가면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금 있다가 같이 가봅시다”


"가짜는 어떻게 해서 만들었나요?"

"나도 예전 선배한테 배웠던것입니다만, 우선 비슷한 물건을 구입해야 되는데 우리나라에는 없어서  몇년 전 중국에 갔다가 모조품을 사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집에서 00약품을 이렇게, 저렇게 칠 하고 시골 어디에 어떻게 묻어 두었다가 나중에 꺼내어 보니 누가 봐도 속아 넘어갈 만큼 물건이 되었습니다."

(모방범죄 예방을 위해서 언론에도 기초적인 것만 제보하고 수법은 생략)


"이번이 처음이었나요?"

"만들기는 몇개 만들었는데 판매는 처음 했습니다."


"집에 있던것도 그렇게 만들었나요?"

"예"


"그것도 팔려고 했던것이지요?"

"예"


"이번 판매가 통과되면 팔려고 했나요?"

"예"


모조품들에 대한 진술을 확보했다.


김 모를 데리고 카토릭 병원 주택가를 돌아다니다가 집을 찾게 되었고 그 집에서 이모를 검거하였다.


조 사장에게 받은 돈의 행방에 대하여 추궁을 하였더니 1억 2천만 원을 받아서 자신이 7천만 원을 가지고 나머지 5천만 원은 이모에게 주었다고 했다.


김 모는 7천만 원 중 2천만 원은 사용하고 5천만 원은 변제를 하였고, 이모는 4천5백만원을 변제하였다고 한다.  


골동품이 고가이지만 거래 성사가 힘들고, 이제는 도굴 할만 한 곳이 거의 없어서 도굴하기도 여의치 않고 정부에서 강력한 단속과 관리로 을 할 수 없게 되어 생활이 어려워지자 생활비 마련을 위하여 약 5년 전부터 계획을 했다고 한다.


능이나 묘속에 있는 부장품들은 망자의 혼을 달래기 위하여 같이 묻은것인데 이를 발굴 하여 몰래 판매 하는것은 망자들이 한 풀이를 함으로(?) 그대로 두는것이 좋을것 같다.


사재로 국보급 문화재를 수집, 보관하시다가 후세들에게 물려주신 故 간송 전형필 님과 故 전(前)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님에게 아낌없는 감사와 고마움에 박수를 보냅니다.


                                         금동반가사유상78호(오른쪽)와 83호 (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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