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가 없는 사회
광복 80주년 친일파 미청산이 우리에게 남긴 것
정의가 없는 사회
1945년 8월 15일 우리가 다 아는 것처럼 조선은 광복을 맞이했다. 천황의 옥음 방송 이후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찾고 우리 나라를 되찾은 것처럼 보였다. 친일파들은 고개를 숙였고 사람들은 거리로 나와 만세를 불렀다. 곳곳에 건국준비위원회가 설치되었고 그들은 치안을 맡았다. 일본인들은 쫓겨나듯 자기네 나라로 돌아갔다. 그렇게 다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소련과 미국의 합의로 38도선이 그어지고 남쪽에는 미군이 북쪽에는 소련군이 주둔하였다. 남쪽에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해야 하는 미군정으로서는 좌익 성향인 건국준비위원회를 인정하지 말아야 했다. 결국 그들은 건국준비위원회도 조선인민공화국도 인정하지 않았다. 대신 인정한 것은 친일파였다.
친일파 나라를 판 이들 민족 반역자들이란 이름으로 불리운다. 그들이 한 일은 일본군을 찬양하는 시를 쓰거나 카미카제를 찬양하거나 국방 헌금을 내는 일이었다. 거물급이 아닌 친일 부역자들은 면서기나 순사 보조원으로 일하면서 마을의 동태를 밀고하거나 위안부 모집 징병 징용에 앞장서는 일에 앞장섰다. 그들은 조선인들에게 원수였다. 그렇지만 동시에 미군 입장에서는 자본주의 사상을 가진 일제의 아류 집단이었고 행정 능력을 갖춘 인텔리였다. 미군은 일본에 대해서는 수천 명의 인류학적 지식을 가진 전문가 집단을 가지고 있었지만 조선에 대해서는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래서 친일파와 손을 잡은 것이다. 미군정은 행정 명령을 내려 친일파들이 본래의 업무에 복귀하라고 지시했다. 이것은 다 죽었다 싶은 친일파들에게 동앗줄이었다. 그렇게 친일파들은 나라의 요직에 복귀했다. 복귀했을 뿐만 아니라 더 높은 자리로 승진했다. 주인을 갈아탄 셈이다.
1948년 우리 정부가 수립되었을 때 반민족 행위자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그렇게 반민족 행위에 대한 특별 처벌법이 입안되었고 반민족행위특별처벌위원회가 발족했다. 그러나 그 일은 순탄하지 않았다. 자신의 지지기반이 필요했던 이승만의 필요에 의해 친일파가 기용되었고 권력의 핵심에 의해 반민특위의 행보는 늘 방해받았기 때문이다. 극우 관변단체와 극우 깡패 단체에 의해 반민특위가 습격당한 일도 비일비재 했다. 게다가 친일 경찰이자 대한민국 경찰의 핵심 노덕술이 반민특위를 해산시키려고 공작을 벌이기도 했다. 악의 행보였다.
결국 반민특위는 딱 몇명만 기소한 채로 해산되었다. 공산당을 퇴치해야 한다는 논리에 밀린 것이다. 정작 그 기소된 몇몇도 나중에는 풀려났다. 친일파 청산에 실패한 것이다.
친일파 청산을 적극 방해한 대한민국 정부는 정작 아무 죄도 없는 보도연맹원들에 대해서는 학살극을 벌였다. 게다가 후퇴 와중 감옥에 갇혀 있는 형사범과 정치범을 학살하기까지 했다. 서울을 탈환하고 나서는 어쩔 수 없이 공산 괴뢰군에게 밥을 줄 수 밖에 없었던 이들을 처벌하기까지 했다. 죄 있는 자를 면죄하고 죄 없는 자를 빨갱이로 몰아 죽인 것이다.
이렇듯 초창기 대한민국의 성립은 이렇게 저주로 물들여졌다. 죄 있는 자를 면죄하고 죄 없는 자를 국익이란 이름으로 죽이는 이러한 행위는 우리에게 힘 있는 자는 면죄되고 힘 없는 자는 면죄되지 않는다는 독을 주입시킨 것이다.
이러한 독은 현재까지도 계속된다. 죄 있는 자가 처음부터 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성공을 했다는 이유로 힘이 있다는 이유로 국익이 된다는 이유로 면죄되었기에 대한민국에는 정의가 실종되게 되었다.
공부를 해서 의사가 된 자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무시하고 환자를 성폭행하는 일이, 공부를 해서 판사가 된 자가 피해자의 상황에 공감하지 못하고 전관예우에만 신경쓰는 일이, 공부를 해서 경찰이 된자가 피해자를 생각하지 않고 자기 밥그릇만 챙기는 모습이, 공부를 해서 기업인이 된 자가 기업 윤리를 무시하는 일이, 인기를 얻은 인플루언서가 윤리를 무시하고 돈을 위해 사회적 약자를 조롱하는 컨텐츠를 생산해내는 일이, 암호화된 채팅앱 기술을 배운 자가 사회적 약자를 협박하여 착취물을 만들어내는 일이, 학교폭력을 하는 자가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로 면죄되는 일이 대한민국에 빈번한 이유는 바로 대한민국 성립 초반에 죄 있는 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약 그때 죄 있는 자를 처벌하고 독립운동가들과 참전용사들을 제대로 보상했다면 사람들은 선한 일이 보상받는다는 사실을 내면화하고 선한 일을 하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착한일 해봤자 보상받지 않는다는 그런 이야기가 우리 내면 속에 퍼지게 된 것이다.
올해로 광복 80주년을 맞았다. 아직까지도 친일파의 재산은 환수되지 않았고 참전용사와 독립운동가는 여전히 가난하게 살고 있다. 혹자는 지금은 늦었다고 말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친일파의 행위를 기억하고 그들의 재산을 일부나마 환수해 국고로 귀속시키는 것이 착한일 해봤자 보상받지 않는다는 그런 이야기를 부술 그런 단초가 되지 않을까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