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창립의 저주 정몽주

by 이엘

조선 창립의 저주 정몽주


- 조선 성립


조선은 고려의 수호신 정몽주를 죽임으로써 성립되었다. 만약 정몽주가 죽지 않았다면 조선은 아마 창립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정몽주는 이성계의 사상적 토대인 정도전 일파를 죽이려 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고려 전부의 무력을 가졌어도 사상적 기반이 없으면 나라를 세울 수 없는 법 정몽주는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정도전 일파를 국문 도중 때려죽이려 했다. 이성계는 사냥 도중에 낙마하였기에 그 흐름을 막을 수도 없었다.

그렇기에 정몽주를 죽인 이방원의 행동은 조선 건립의 결정타가 되었다. 정몽주를 선죽교에서 죽이고 그 목을 선죽교에 매달아 둠으로써 정몽주를 중심으로 모였던 구 세력들을 일거에 소탕하고 정도전 일파를 구했던 것이다. 비록 정몽주를 포섭함으로써 조선 건립의 정당성을 얻으려 했던 이성계의 계획은 실패했지만 그토록 원했던 새 질서 창립에는 성공한 것이다. 그렇지만 정말로 성공한 것일까?


- 정몽주의 충심의 이유


정몽주는 우왕과 창왕을 갈아치우고서라도 고려를 보존하려 했다. 그 이유는 300년을 이어왔던 고려 왕조가 새 왕조로 바뀐다면 백성들로부터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할 것이고 나라의 국체는 혼란에 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는 중국으로부터 교훈을 얻었다. 정당성 없는 왕조 교체가 백성을 어떻게 도탄에 빠트리는 지 알았던 것이다. 만약 이성계가 왕위를 차지한다면 다른 무장들도 왕위를 차지하겠다고 나설 것이며 그것은 백성을 도탄에 빠트리는 길이자 질서를 무너뜨리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내 몸이 진토되어서라도 임에 대한 마음은 가실 줄이 없다고 말했던 것이었다.


고려를 지키고자 하는 명분은 고려의 구세력과 백성들을 결집시켰으며 이성계 일파에게 대적하게 하는 힘을 가져다 주었다. 칼은 없어도 명분의 힘으로 이성계를 위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성계는 그런 고려의 수호신이 자신의 나라 건국을 인정해 준다면 백성의 인정을 받을 수 있었고 또한 천명 또한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정도전 일파가 숙청 위기에 처했어도 정몽주를 죽일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백성의 인정을 받기 위해 이성계는 무력을 쓰지 '못'한 것이다. 천명이라는 유교적 성리학적 질서를 거스를 수 없었던 것이다. 아마 앞뒤 재지 않고 무력을 썼다면 위화도 회군 당시에 왕이 되었을 것이다.


- 이방원의 무력 그리고 성리학 질서의 부정


이렇게 무력을 쓰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자기부정이었다. 고려의 충신인 정몽주를 죽이고 무력으로 정권을 찬탈한다면 스스로가 주장했던 성리학적 명분을 부정하는 꼴이 된다. 정몽주도 그걸 잘 알았기 때문에 정도전 일파를 죽이려 들 수 있었다.


그걸 부정한 것이 이방원이었다. 그는 실리주의자였다. 어떠한 명분도 현실 위에 있을 수 없다고 보는 현실주의자였다. 이방원은 조선 건립이 성리학적 명분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는 결단했다. 선죽교에서 정몽주를 죽이기로...


앞에서 말한 것처럼 정몽주를 죽이고 조선 왕조는 건립될 수 있었다. 하지만, 고려에 대한 충의 상징인 정몽주를 무참히 '살해'하고 조선을 건립했다는 '사실'은 역사에 영원히 남게 되었다. 이것은 실리를 위해서라면 조선이 스스로가 주장한 성리학적 질서 또한 저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증명한 것이 되었다.


스스로에 대한 자기부정 그것이 정몽주의 죽음이 조선에 남긴 저주이다. 이 이후 조선은 성리학적 질서를 실리에 의해서 부정하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 선비들을 죽인 사화들, 이사제도를 무시하고 백성을 착취하는 관리들, 그리고 여진과 왜에게 굴복하고 새로운 조공 질서를 받아들인 것. 이러한 저주는 현대까지 남아 조선을 괴롭히고 있다. 조선 창립을 위해 충신을 죽였다는 역사적 사실은 역사의 종말 때까지 영원히 남기 때문이다.


- 마치며


우리는 조선이 그랬던 것처럼 실리를 위해 이익을 위해 윤리를 거스르는 일을 하기도 한다. 그것이 어쩔 수 없었다면서 그것이 그때는 모두를 위한 것이었다면서 그것이 그때는 다수를 위한 것이었다면서


하지만 그렇게 윤리를 거스른 결과는 결국 자기부정이다. 자기부정의 결과는 조선의 경우에서와 같이 자기 파멸로 이어진다. 스스로를 부정하면 결국 스스로 파멸하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실리를 위해 윤리를 억압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실리인가? 윤리인가? 이방원의 길인가? 정몽주의 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