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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터면 끝까지 이야기할 뻔했어요

원초적 입장

by 이노나

원초적 입장





바람에 머리카락이 날렸다

어찌할 도리 없이 길어진

앞머리가 눈을 가렸다

점심을 먹고 난 뒤였을 것이다

어렴풋이 보이는 담의 끝이라든가 잘려진 선처럼

비좁은 빛을 따라 허둥대고 있을 때

어디선가 익숙한 냄새가 풍겨왔다

온화한 포장지에 싸인 탐욕이

예언의 형태로 소비될 때 퍼지는

묵시적 분위기와 비슷했는데 나는 어쩐지

無知에 휩싸여 무엇이든 찢고 싶었다

어떻게든 찢고 싶었다 그러나

그 안간힘은 해석할 수 없는 재채기와

번지지 않는 불꽃이었을 뿐

그저 버릇처럼 인용되는 무의미였고

해와 달이 동시에 사라진

그날의 새벽처럼 슬픈 꿈이었다


바람에 머리카락이 날렸다

정오에서 막 벗어난 시각이었다

저 멀리 종소리가 낮게 들려왔다

길 위의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은 척

아무렇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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