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기척이
사소한 기척이
그날은 그러니까 가만히 따뜻하고 화창한 날이었던 것 같아요
이토록 완벽한 고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할 일이 없었죠
작은 서랍장 위에 쌓여 있는 편지라든가
그 위에 놓인 돌멩이의 뾰족한 방향까지 모두 딱
멈추었으면 했는지도 모르겠어요 어쩌면
(편지나 뾰족한 돌멩이에 대해서는 궁금해 하지 마십시오 아주 비천한 내용들과 쓰임이니까요)
순간이었습니다
창문은 닫혀 있었고 문은 덜컹거리지도 않았죠 그러나
알게 되었습니다
변하는 것들의 묘한 표정 같은 거 말이에요
설명 대신 분위기부터 던져 반응을 살피는 구성은 식상해지는 법을 모릅니다
나는 조용히 일어나 되도록 조심스럽게 낱낱이 살펴보았습니다
나의 기억은 현상보다 늦어서 구차하고
비밀은 나를 제외할 때 빛나죠
안타깝게도 확신은 힘이 없어요
나는 나는
주어로만 이루어진 말들이 흩어집니다
그때 내 발등을 툭 건드리는 것이 있었어요
맥락도 없이 불쑥 진부하지만 가장 위대한 순간 말이에요
햇살이었습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기억이었습니다 겨울을 뚫고 깊숙한 곳까지 길게 비추는, 연약하지만 질긴 끈이었습니다 오래 두고 나를 지켜보던 누군가의 기도였습니다
편지들 위에 놓았던 돌멩이를 천천히 들어 올립니다
생각보다 가벼운 낙담들이 한 장씩 사그라집니다
내게도 있었으나 잊었던 것이 사소한 기척을 내며 일어섭니다
멈추었던 것이 딸깍 나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