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s bae May 25. 2024

오늘의 날씨는 어떨까?



엄마는 매일아침 휴대폰으로 오늘의 날씨를 확인하고는, 어제보다 몇 도가 높다느니 오후에 비가 온다느니 혼잣말인지 내게 하는 말인지 모를 이야기를 늘어놓곤 했다. 오늘의 기상청 납셨네, 나는 오늘의 날씨가 궁금하지 않았다.



어차피 사무실에 하루종일 갇혀 있는 신세에 날씨 따위가 무슨 소용이람. 흐리면 흐린 대로, 맑으면 맑은 대로 출근하기 싫은 건 매한가지인데. 만성적인 비타민D 결핍자인 실내형 인간에게 날씨의 변화는 별 의미가 없어 보였다.



그런 내 삶에 날씨 예보의 위상이 매우 높아졌으니, 바로 오전 산책을 시작하면서부터다. 처음으로 평일 오전 10시에 공원을 산책하던 그 순간의 감개무량함을 아직도 또렷이 기억한다.



사탕 주변에 몰려든 개미마냥 버스와 지하철 틈바구니 속에 나를 욱여넣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 하루의 시작을 온전히 내가 정할 수 있다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비록 근무시간을 줄여 자유를 얻은 덕분에 월급은 무척 단출해졌지만 말이다.



내게는 오전 10시에서 11시 사이의 산책이 가장 달콤하다. 어린이집 아가들이 소풍을 나오고, 그 옆으로 강아지들이 부지런히 걸어 나간다. 어르신들이 게이트볼장에서 연신 공을 치고, 자전거가 지나가고, 달리기를 하고, 나무그늘 아래에서 땀을 식힌다.



모니터와 마우스, 전화통을 붙잡고 씨름하는 대신, 아가들과  강아지들과 게이트볼장의 어르신들과 산책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따뜻한 햇볕아래 광합성하는 시간. 



가끔은 유독 희뿌연 하늘 미세먼지도 아닌데 구름이 잔뜩 껴서 우중충해 보이는 날씨가 있다. 폭우가 내리친다면 아예 마음을 접겠지만, 이런 날씨의 산책은 달콤함이 반감되기 쉽다. 이럴 땐 선곡이 매우 중요하다.



해가 구름에 가려졌을 때, 지금의 온도, 습도, 바람, 냄새,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의 몸과 마음의 상태를 고려해 신중하게 플레이리스트를 고른다. 요즘 꽂힌 가수는 홍이삭, 최유리, 다린. '사랑은 하니까', '별 같아서', '숲', 오랜만이야', '저 별은 외로움의 얼굴' '별' 'dog-ear serenade'.. 이들의 읊조리는 듯한 목소리는 해가 가려졌을 때 유독 더 잘 들린다.



각자의 속도대로 걸어가는 느리고 따뜻한 시간. 지극히 혼자이지만 모두가 연결되어 있는 이 달콤한 시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산책을 가자.


내일의 날씨는 어떨까?   



 

이전 15화 아삭아삭 단단하게 그렇게 커가고 싶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