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s bae Jun 24. 2024

응, 너는 업장이 많아 보이거든.



"응. 너는 업장이 많아 보이거든.

그렇게 나를 놀리고 그 사람은 큰 소리로 웃었다.

그래서 너는 이번 생의 업장을 다 소멸하고 나보다 먼저 건너갔느냐고 묻고 싶다."



2023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단편 수상작품집에 실린 다섯 작품 중 네 번째다. 'too much love will kill you' .. 업장.? 업보와 비슷한 말인가 싶어 검색에 넣어보았다.



업에 장애가 있는 거라고. 전생에 악업을 지은 죄로 인해 받게 되는 온갖 장애라고 한다. 업장이 두터운 사람은 수행을 방해하므로 업장이 다 녹을 때까지 끊임없이 참회 개과하고 수행 정진해야 한다고.



며칠 전 외종조부가 돌아가셨다. 엄마에게는 유일하게 남은 집안 어르신이었다. 몇 년 암수술을 받았던 고모는 최근 몸이 급속히 안 좋아지셨다. 이제 살만한데 이렇게 죽는 게 너무 억울하다고 했다.



엄마는 중년이 되면 서로 자기 몸 여기저기 아프다는 이야기로 실컷 수다를 떤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나는 내 앞에 닥칠 이별들이 두려워졌다. 그래서 나는 반려견을 키우는 것조차 무섭다. 모두 다 사라지는 거라면 사는 의미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우리는 왜 태어난 거야?



'too much love will kill you'의 주인공은 앞집 남자를 3번이나 살리고는 결국 대신 죽음을 맞이했다. 주인공은 앞집 남자를 살리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몇 주 전 빠져들었던 드라마 '눈물의 여왕' 백현우는 아내 홍해인을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며칠 전 공연을 다녀왔다. 무명에서 이제 유명가수가 된 10명의 가수들은 마치 노래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노래하고, 사랑하고, 사람을 살리는 것. 그것이 그들 각자의 업장을 녹이는 방식 아닐까. 그것이 인생의 전부이지 않을까.



어딘가 있을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행복, 가정의 평화, 경제적 자유 같은 것들은 너무 뻔하고 식상하다 생각했다. 그보다 좀 더 고차원적이고 고상하며 심오한 무언가, 이를테면 자아실현이나 진정한 자유 같은 걸 맛보고 싶다.



문득, 어딘가 있을 그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것은 할머니가 되어서도 지속될지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나는 업장이 많아서, 소멸해야 할 업장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어서, 건너가지 않고 남아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노래하고, 사랑하고, 사람을 살리는 것. 그중에 하나라도 행할 수 있다면. 그것이 나의 업장을 녹이는 방식이겠지. 그것이 남은 인생의 전부이겠지.





이전 16화 오늘의 날씨는 어떨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