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아 레르스타 조명을 구입했다. 2만 원 남짓한 거라 싸구려 티가 난다는 리뷰도 있었고 애당초 구입하고 싶었던 이탈리아 아르떼미데 주황색 버섯모양 조명도 아니었던 터라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얘기하자면 더 이상 치과 조명 같은 눈부신 불빛 아래 놓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만족스러웠다. 주황색 조명에 브리츠 블루투스로 음악을 더하면 분위기는 꽤 낭만적이고 여기저기 머리카락과 먼지가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은 덤이다. 선명하게 보지 않는 편이 때로는 더 나은 법이니까.
거실에 조명까지 두고 나니 집을 꾸미고 정리하는 일이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밥을 먹고 운동을 가고 출근을 하고 그렇게 일상을 꾸려나간다. 이륙 후 안정궤도에 접어들면 안전벨트를 풀어도 된다는 안내방송이 나오듯 마음의 빗장도 함께 풀어나간다.
'장어 있는데 와서 먹을래?' 본가 5분 거리에 살면서 수시로 밥을 얻어먹는 것은 진정한 독립이 아니라지만 아무렴 어때. 엄마는 장어와 백숙, 전복죽 등등 각종 영양식을 준비했다. 주로 내가 혼자서는 절대 해 먹지 않을 것들로. 나는솟아나는 효심을 잠재우며 좋은 이웃이 곁에 있어 너무 좋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어느 날 엄마는 싸고 싱싱하다며 오이를 잔뜩 사들고 와서는소박이를 담갔다. 손가락 한마디 정도로 키가 작아진 오이들은 스텐 대야에 가지런히 서 있었다. 십자가 모양으로 1/4 지점까지 칼집이 난 채로.
잠시 후 엄마는 오이 군단 위로 펄펄 끓는 물을 가차 없이 퍼부었다. 오이가 잠길 때까지. 으 너무 뜨겁겠다. 이렇게 해야 쉽게 물러지지 않고 아삭아삭한 오이소박이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4,50분 저렇게 푹 담가놓아야 한다고. 엄마는 오이들을 뒤로하고 쿨하게 산책길에 나섰다.
칼집이 난 채로 뜨거운 물이 머리끝까지 찼으니 얼마나 괴로울까? 이 과정이 어떻게 단단한 오이를 만드는지 잘 모르겠지만, 위기는 기회고 시련은 사람을 더 단단하게 만든다는 진부하고도 뻔하디 뻔한 교훈을 오이에게서 한수 배운 것 같다.
저녁 요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105동 앞에 나무 두 그루가 너무 울창해 한참을 바라봤다. 쉽게 무르지 않고 아삭아삭 단단하게. 나도 그렇게 커가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