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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s bae Sep 06. 2024

캐스트 어웨이, 인간에게 타자는 어떤 존재일까?



한국 영화 '김씨 표류기'의 원조 버전일까? 늘 머릿속에 타임 테이블을 그리며 바삐 살아가던 현대인의 표본 '척 놀랜드'가 어느 날 나 홀로 섬에 표류하고 만다. 143분이라는 그리 짧지 않은 러닝타임 동안, 그의 명연기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흥미진진하다.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비행기 사고, 나 홀로 무인도에 떨어지게 된다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과연 하루하루 살아갈 수나 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 속에, 제법 진지하고도 철학적 사유가 이어진다.



인간에게 타자는 어떤 존재일까? 



주인공 '척'은 섬에 표류된 후 수차례 시도 끝에 마침내 불을 피우는 데 성공한다. 세상을 다 가진 듯 호탕하게 웃어 재낀다. 하지만 어느 날은 죽고 싶은 마음이 가득 찬다. 자살을 시도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윌슨'의 등장은 이 영화가 조금 더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척'은 기어코 배구공에 '윌슨'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자신의 하나뿐인 대화 상대로 삼는다. 객관적인 물체에 불과하던 배구공에 자신만의 의미를 만들어 생명력을 불어넣은 것이다.  

인간에게 타자는 어떤 존재일까? 외로움을 해소하고 소통하는 존재? 나 외의 다른 사람 또는 다른 것이 존재한다는 인식, 그리고 그 존재에게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객관적인 것을 주관적인 것으로 만드는 일이다. 

이제 배구공은 더 이상 배구공이 아니다. '척'에게는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친구이자 반려인이 된다. 인간은 타자를 통해 자기 자신의 마음을 발견하고 뚜렷이 한다. 이는 행동에 변화를 일으킨다. 

자살을 시도하던 척에게 '윌슨'은 삶을 지속하는 힘이 되어 준다. 살고 싶은 마음, 탈출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 또 다른 삶을 살 수 있으리라는 기대, 그는 무인도 탈출 계획을 착실히 이행한다.

'윌슨'을 잃게 되었을 때,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듯한 괴로움에 절규할 수밖에 없다. 망망대해에 외로이 떠나보내게 된 '윌슨'에게 이렇게 외칠 수밖에. I'm sorry.............!!

영화는 주인공 '척'의 무인도 탈출 성공기로 끝을 내지 않는다. 그를 살게 한 타자의 존재가, 이번에는 그를 절망에 빠뜨린다. 4년 만에 돌아왔지만 애인과 함께 할 수 없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아내, 엄마가 되었다. 

그는 길을 잃은 듯 보인다. 이때 한 여성이 등장한다. '척'이 4년 만에 배송을 완료한 소포의 주인이다. 영화 말미에 등장한 그녀는 그의 또 다른 '윌슨'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주인공 '척'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또 다른 '윌슨'을 만들고 또다시 잃어버릴 것이다. 

인간에게 타자는 어떤 존재일까? 그보다 먼저 선행된 것은, 인간이 객관적인 그것에 불과한 것에 주관적인 의미를 담아 생명력을 불어넣었다는 것이다. 아마 그것이 전부일 것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타자를 만들고 잃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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