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플랜 75'는 비현실적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어딘가 그 언젠가는 기어코 시행되고야 말 것 같은 지극히 현실적인 스토리다.
주인공 '미치'는 78세 고령의 혼자 살고 있는 여성이다. 호텔에서 청소 일을 하고, 친구들과 노래를 부르고, 단출한 살림을 꾸리며 살아간다.
주인공 '미치'가 삶을 대하는 태도
누군가는 tv 전원을 강제로 뽑아 공익광고하듯 홍보되는 플랜 75에 반감을 드러내고, 누군가는 호화로운 민간 시스템과 비교하며 죽음의 플랜에 대해 이야기한다. 극 초반 '미치'는 플랜 75에 대해 이렇다 할 표현을 내비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이 시스템에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짐작할 수 있다.
주인공 '미치'는 외부에 의지하거나 의탁하기보다는, 스스로 자신의 삶을 책임지고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이다. 이런 그녀의 믿음, 삶을 대하는 태도는 주어지는 책임과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고, 어려움이 닥쳤을 때 적극 해결하려 노력하는 모습으로 드러난다.
호텔에서 강제 퇴사를 당한 후 생계가 어려워지자, 컴퓨터에 접속해 구직활동을 시도하고(결국 성공하지 못하지만), 야밤에 길거리에서 교통안내 일을 하는 등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내려 한다.
그녀는 주변에서 도움을 받는 쪽이라기보다는, 상대를 배려하고 도움을 베푸는 쪽에 가까웠다. 친구들과 노래를 부르러 가서 명부를 작성하는 것도, 레코드판을 찾아주는 것도, 안부전화를 걸고 친구의 죽음을 발견하는 것도 모두 그녀였다.
'미치'는 집이 강제철거 위기에 놓이자 새로운 주거공간을 찾고자 노력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이라고는 기초수급자를 신청하라는 권유뿐이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제안을 거절한다. 스스로 삶을 꾸려나갈 수 있다고, 또 그래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빈곤한 고령의 독거노인에게, 세상은 그리 관대하지 않다
결국, 그녀는 수급자 신청을 위해 관공서를 찾아가고, 당일은 접수가 마감되었다는 안내문을 보게 된다. 그날 저녁, 길거리에서 플랜 75의 무료 배급 국수를 받아들이는 순간, 그녀는 외부에 의지하고 의탁해서 살아가야만 하는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이제까지 그녀가 삶에 대한 가지고 있던 믿음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더 이상 삶을 지속할 수가 없다.
타인과 나, 그리고 생의 감각
주인공 '미치'는 플랜 75를 신청한 후, 상담사와 15분이라는 짧은 전화 통화에서 자신의 지난날을 이야기한다. 그녀와 함께 볼링공을 치고, 크림소다를 홀짝인다. 상담사와의 만남이 그녀의 마지막 선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을지, 표면적으로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녀가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 자기 자신이 갖고 있는 생생한 생의 감각을 다시금 느꼈을 것임은 분명한다.
플랜 75로 떠나는 날, 그녀는 자신의 가녀리고 주름진 손을 가만히 응시한다. 줄넘기를 하는 어린아이에게 수줍게 손을 흔들어 보인다. 버스에 타 눈부신 햇빛에 잠시 손을 기댄다.
또 한 번, 타인을 통해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린다. 병상에 누워 하나의 처리되어야 할 대상으로 전락하여 서서히 눈을 감는 옆자리 노인을 바라보는 '미치'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그녀는 살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노래를 부르는 그녀의 마지막 모습은 어쩐지 처연하다. 조용히 사라져주길 바라는 세상에서, 그녀가 가지고 있는 삶에 대한 믿음을 유지하는 일은 좀체 수월해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