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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든라이언 Feb 16. 2024

21. 禪, 선善과학의 시작 III

나란히 걷는 선불교

앞서 살펴본 대로, 우리는 비록 저마다 오감능력이 다르고 오온이 지어온 업장의 두께가 서로 다릅니다. 굳이 기억나지 않는 전생까지 가지 않더라도 과거 지나온 세월 간에 쌓아온 서로 다른 카르마로 인해 계급과 차별의 세계가 벌어졌습니다.


이로 인해 건강하고, 학력이 높거나, 경제력이 있으며 소위 명예로운 지위에 머무르는 이들은 그러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 낮춰보는 마음이 생기고 이와 반대로 그러한 조건이 되지 않는 이들은 열등감에 사로잡히고 맙니다. 스스로 이를 경계하는 깨어있는 이가 아니라면, 차별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깁니다. 돌이켜보면 저도 계속 이쪽저쪽 선을 넘나들었습니다. 부정할 수 없군요. 부끄럽습니다. 깨어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비단, 이 차별심은 인간 들 사이에서 뿐만 아니라, 함께 더불어 존재하는 지구상의 뭇 생명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 왔습니다. 힘을 크게 가진 자가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존재를 함부로 대해왔습니다. 원래 잡을 수 없는 것을 탐내는 어리석음과 소유하지 못해 분노하는 마음이 더 뿌리 깊숙이 자리 잡았습니다.


그래서, 인류의 문명은 변화하고 발전을 해왔을지언정 의식의 수준은 한 걸음도 진보하지 못한 것처럼 보입니다.


초기 자동차는 오로지 타는 이의 속도와 편의에만 맞추어 개발되어 왔습니다. 운전자가 곧 보행자라는 사실을 외면한 것입니다. 군사적 억지력을 내세운 핵폭탄의 대상이 곧 내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고 할 수 있을까요? 오펜하이머의 모순적인 최후의 후회는 초기에 만류하는 동료의 눈물을 외면하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슬픈 것은 그런 그를 비난할 수 없는 우리의 군상입니다. 


현대과학의 그림자는 객관의 불완전성과 더불어 오랜 역사 속에서 반복되어 온 우리의 일그러진 욕망이 창조한 인과적 피조물입니다.


한쪽 눈만 갖고 한 방향으로만 달리는 기형적인 잿빛 괴물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이제, 고개를 돌려 우리의 미래로 무섭게 달려오고 있습니다.


오랜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동안 분명히 수많은 예측과 예언들이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은 파멸적인 상황들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여기저기 전쟁이 나고 경제적으로나 자연환경적으로 불안정한 시대여서 그런지 요즘 무척이나 많은 미래의 재앙에 대한 예언들의 징후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측과 예언이 빗나가기만 기도하고 바라는 것이 최선일까요? 역시 나만은 내 가족만은 그 불행이 비껴가기를 바라는 이기심을 가지는 것이 바람직할까요?


아니면,


이 괴물의 질주를 멈추고, 치유해서 다시 밝은 미래를 향해 힘차게 날아오르는 유니콘으로 재 탄생 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있습니다. 


우리의 어둠은, 우리 자신이 만든 오감에 속아 자성이 아닌 제행무상인 모든 것 들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바깥경계에 집착함으로써 생긴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본래 무한히 밝고 청정한 본성 즉 마음의 고향으로 생각의 방향을 반대로 돌이키면 됩니다. 


그리고 모든 유정들은 저마다 부처님의 성품을  갖춘 이미 완전한 존재라는 것, 따라서 우리는 모두 각자의 태양을 갖춘 빛나는 성품을 지니고 있다는


[절대평등]


 눈을 뜨면 됩니다.


이것은 부처님 가르침 (불교)의 핵심이며 바로 앞으로 과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입니다.


자리이타와 절대평등의 마음으로 달리는 운전자와 걷는 보행자 모두 평등하게 행복한 방향으로 과학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들을 평등하게 보고 더불어 함께 살아가겠다는 의식을 가지고 그 방법을 고민하고 찾아내어야 합니다. 핵무기를 안전하게 해체하는 작업을 시작하면 됩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바로 시작하는 때입니다.


이 세상에 믿음을 강요하며 전쟁을 일으키지 않은 종교는 불교가 유일합니다. 모든 잘못은 스스로의 허물에 있어 안으로 돌이키는 참회를 하기 때문입니다. 비난하지 않습니다. 비폭력과 평화의 힘으로 길을 밝힙니다. 모든 존재를 평등하게 보며 모든 변화하는 것에 집착하지 않고 오직 본래성품을 밝히는데 힘을 씁니다. 이것이, 가장 지혜로운 종교로 인정받는 이유입니다.


앞선 글들을 통해 간략하게 살펴보았지만 이 참회와 참선모두 구름너머 찬란하게 빛나는 우리의 본래성품을 되찾는 가장 온전하면서 빠른 길입니다. 물론 앞의 선지식들께서 그래오신 것처럼 더 빠르고 더 직접적인 방법들이 개발될 것입니다. 도는 흐르는 것이라 했으니까요.


굳이 착한과학이라는 제목을 쓴 것은 과학자들이 그나마 객관성이 무엇인지 교육받고 훈련받은 전문인이기도 하면서, 직접적으로 발명과 발견을 하는 주인공임과 동시에 다른 이들에게 바른 길을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을 하는 중요한 위치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Ph.D 박사라는 무게
라는 글을 쓴 것은 이 글을 남기기 위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과거는 지나갔고 현재는 미래를 만듭니다. 현재 우리의 밝은 마음이 미래를 비춥니다. 


종종 상상합니다.

각자의 등불 심지에 불을 붙여 아직 젖어있는 다른 이들의 심지를 말리고 불을 옮겨주어 하나 보다 함께 더욱 빛나는 미래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우리 지구를 따뜻하게 감싸고 온 우주를 환하게 비추는 빛의 향연을.


저는 단언컨대,

생각만 분명하게 돌이키면

불안하고 불행할 미래를 밝은 유니콘의 비상으로 바꿀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 기분 좋은 상상이 현실이 되기를 간곡히 기도합니다.


모순, 그 너머

편에 썼던 인용이 다시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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