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사귀고 떠난 첫 여행.
목적지는 속초다.
모스크바에 사는 그녀는 바다와 멀리 떨어져 있다.
저기 북쪽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몇 시간을 비행해도
추운 바다만 있을 뿐이다.
이른 아침 고속버스를 타고 속초로 향했다.
당시 30대 초중반의 나이였지만 난 자동차가 없었다.
돈도 없었지만 크게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녀를 만난 후 자동차가 없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버스를 예약하고, 터미널로 이동하고, 다시 시내버스를 탄다.
그녀는 불평 한마디 없이 웃기만 한다.
그해 여름 속초는 뜨거웠다.
요즘은 양양이 핫하지만 당시에는 속초가 핫플이었다.
한국인은 물론 외국인도 즐비했던 속초.
버스 뒷자리에 앉아 그녀의 손을 잡고 숙소로 향했다.
체크인 후 수산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허기진 배를 갖가지 음식들로 채운다.
어묵, 파전, 김밥, 만두를 배 터지게 먹고
수박주스로 입가심을 했다.
그녀의 고향에서 온 킹크랩 친구도 만났다.
너무 비싸 구경만 한다.
속초 해변에는 여름을 즐기는 사람들로 붐볐다.
미리 준비해 온 돗자리를 나무 밑에 깔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녀를 안고, 업고 이리저리 유영한다.
내가 살던 작은 도시는 외국인이 적다.
그녀와 함께 버스를 타고, 카페를 가고, 식당을 찾으면
어딜 가나 눈길을 받았다.
속초는 국제도시(?) 답게 외국인 관광객이 많았다.
또 우리처럼 국제커플도 여럿 보인다.
부럽네요
안전요원분이 우리를 흐뭇하게 바라시며 한마디 하셨다.
모스크바는 해산물이 귀하다.
바다와 멀리 떨어져 싱싱한 해산물을 접하기 어렵다.
이마트 옆 홍게 무한리필 가게는 그녀에게 천국 그 자체다.
싱싱한 게를 무한으로 먹다니!
우리는 먹성이 좋다.
둘이서 10마리 가까이 먹어 치운 후 라면까지 끓였다.
다음날, 김밥천국에서 우아하게 고기를 썰었다.
조식이지만 돈까스, 열무냉면에 김밥까지 추가했다.
몇 년 전 속초에서 잠시 살았다.
공무원 시험 준비한다며 회사를 때려치우고
공부한 곳이 속초였다.
설악산 국립공원 근처에 위치한 고시원에서 머물렀는데
그녀와 찾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버스를 타고 설악산 국립공원 입구까지 갈 수 있지만
일부러 고시원 앞에 내려 걸어갔다.
여기는 뭐고, 저기는 뭐야.
관심도 없는 그녀 앞에서 재잘거렸다.
한참을 걸어 입구에 다 달았다.
날씨가 더워도 너무 덥다.
시원한 생수로 목을 축이고
케이블카로 정상에 오른다.
시원하다.
높은 곳에 오르니 한결 낫다.
그녀가 얼굴을 찡그리며 움찔움찔한다.
발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샌들을 신고 걷고, 오르니 그럴 수밖에...
그래도 싫은 내색 하나 없다.
1박 2일의 짧은 여행을 끝낸 후
일상으로 돌아왔다.
난 회사로, 그녀는 학원으로...
그녀는 매일 회사 앞에서 날 기다렸다.
일상이 달라졌다.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