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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떠나기 전

by 일용직 큐레이터

그녀가 러시아로 돌아갈 날이 머지않았다.

그 여름, 참 많은 곳을 다녔다.

이번엔 제주도다.


많은 외국인들이 제주도에 환상을 갖고 있다.

신비롭고 아름다운 섬으로 여긴다.

그녀는 제주도 여행이 꿈이라고 했다.


이른 아침 김포공항으로 향한다.

편의점에서 도시락으로 배를 채운 후 비행기를 탔다.

그녀와 첫 비행이다.


차도 렌트했다.

키가 큰 그녀를 위해 레이로 골랐다.

경차지만 실내는 SUV 못지않다.



운전도 그녀가 한다.

이 날을 위해 국제면허를 발급해 왔다.


난 운전을 못한다.

면허는 있지만 10년 넘게 장롱에 처 박아두고 있다.

한심할 정도로 할 줄 아는 게 없다.


그녀는 긴장하며 운전 한다.

도로, 신호 체계가 달라 헛갈려한다.

난 말을 아꼈다.

그녀가 하는 데로 내버려 두었다.



3박 4일 동안 제주도 해변을 누볐다.

돗자리 깔고 누워 맥주를 마셨다.



먹고 마시며 충분히 제주도를 즐겼다.

시간이 얼마나 빨리 가는지 아쉬울 정도다.

그녀가 돌아갈 날이 머지않았다.



사실 제주도에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안 그러려 해도 자꾸 날짜를 센다.

오늘이 지나면 며칠밖에 안 남네...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웃기만 한다.


그녀가 없던 일상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녀가 없는 일상이 두렵다.


돈도 없고

차도 없고

운전도 못하는 남자


로맨스 스켐이라며 그녀를 의심했던 남자

그 여름, 그녀는 나에게 모든 걸 맡겼다.


나도 무언가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랑, 믿음, 소망

교회 이름 같은 단어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녀가 가기 전 그 무언가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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