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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위한 무언가

by 일용직 큐레이터

두 달을 함께했던 그녀

이제 며칠후면 모스크바로 돌아간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메시지로 처음 알게 됐고

영상통화로 호감을 키웠다.


그녀는 직접 한국으로 날아와

을 잡았다.

그녀의 손을 잡고 서울, 속초, 제주 등

전국을 누볐다.


그러던 그녀가 떠난다.


11살의 나이차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그녀는 20대 초반 대학생이고

30대 중반을 향해가는 직장인이다.


나이도 나이지만

국적, 언어, 문화 모든 게 다르다.

거기에 나이차이까지 크게 난다.


그래서 움츠려드는 쪽은 항상 나였다.

먼저 메시지를 보낸 것도

영상통화를 제안한 것도

만나러 찾아온 것도 모두 그녀였다.


난 우두커니 서서 이게 무슨 일이냐며

우왕좌왕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내 곁에 있어주었다.


그녀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했다.


지난밤에 꿈을 꿨어

그녀에게 확신에 찬 말을 건네려 했는데,

이상한 꿈을 꿨다며 나를 바라본다.


우리가 같은 집에서 아이와 함께 사는 꿈을 꿨어

꿈 얘기를 하며 울먹이는 그녀.

러시아로 돌아가기 싫다며 내 손을 잡는 그녀.

또 그녀가 먼저다.


나도 같은 마음이야. 너와 미래를 함께하고 싶어.

한 발 늦었지만 마음속 깊이 담아두었던 말을 건넸다.

그녀가 울먹인다.


겨우 두 달 만나놓고 미래를 함께한다니...

성급하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녀를 놓치고 싶지 않다.


이렇게 보내면 안 될 것 같았다.

우리는 또 만나야 했다.


그녀가 떠나던 날

공항에 앉아 탑승시간이 임박할 때까지 그녀를 안았다.

품에 안겨 펑펑 우는 그녀에게 웃어 보였다.


넌 슬프지 않냐는 물음에

또 만날 건데 뭐가 슬프냐며 애써 웃어 보였다.


그녀를 보내고 돌아가는 길에 혼자 울었다.

이 나이 먹고 울다니 참...


그녀가 없던 일상으로 돌아왔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걷는다.

퇴근하고 혼자 정처 없이 걷는다.

쉬는 날 혼자 카페에 앉아 멍 때린다.


잘 도착했다는 그녀.

벌써 보고 싶다는 그녀.


한달음에 러시아로 날아가 만나고 싶지만

시간이 허락되지 않는다.


며칠 후 그녀가 이미지 하나를 보내왔다.

비행기 티켓이다.

수업을 어찌어찌해서 3주나 시간을 낼 수 있단다.


바보같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나를 위해 무엇이든 한다.


왜 이렇게까지 하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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