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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박물관 기간제근로자 후기

by 일용직 큐레이터

석사논문 통과 후 생계를 위해 국립중앙박물관 채용에 도전했다.

아직 졸업장을 받기 전이라 기간제근로자로 지원했다.

업무는 전시장 지킴이다.


전시장 지킴이 업무는 간단하다.

전시장을 오가며 작품을 만지거나

시끄럽게 떠드는 이들을 관리하는 역할이다.


당시 최저시급을 받았고,

수요일은 저녁까지 연장근무를 했다.


나와 다른 한분

총 두 명이서 일했는데

점심은 사 먹어야 했다.


최저시급 받으며 점심을 사 먹고

교통비까지 내면 남는 게 거의 없다.


그래도 국립박물관에서 일하면 메리트가 많다.


첫째, 경력인정이 된다. 향후 학예사 자격증, 채용 등에

넣을 경력을 쌓을 수 있다.


둘째, 박물관시스템을 알 수 있다. 국립박물관은 모든 박물관의

표준이다. 전시, 도슨트, 도록, 항온항습, 조직체계 등을 경험할 수 있다.


셋째, 잘 나가는 업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큐레이터의 정점은 국립기관이다.

국립기관에서 일하는 큐레이터는 학예에서도 잘 나가는 분들이 많다. 이들과 함께

일하며 소통하고 친해질 수 있다.


내 계약기간은 3개월 남짓이었다.

특별전 기간 동안만 전시장을 관리했다.

하루 종일 서서 전시장을 오가니 다리가 무척 아팠다.


당시 흡연을 했는데

쉬는 시간 담배를 피우려면

정문 밖까지 나갔다 와야 했다.


전시해설은 자원봉사자 선생님들이 주로 맡으셨다.

중요한 단체 고객이나 VIP가 오면 큐레이터분이

직접 나선다.


매일 해설을 들으며 감을 익혔다.

전혀 모르는 분야지만 매일 귀로 들으니

말로 따라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손님이 드문 오전,

혼자서 작게 말하며 전시해설을 연습했다.


청소를 해주시는 분들도 계신다.

그러니 전시장 지킴이는 더더욱

할 일이 없다.


사실 너무 지루했다.


어느날 큐레이터분이 제안을 해오셨다.

역사를 전공했고, 석사까지 받았으니

전시해설 한 타임을 맡아보아 하셨다.


당연히 좋다 했다.

매일 연습한 전시해설을 체크받았다.

들었던 부분에 더해 논문을 참고해

추가 내용을 덧 붙였다.


어떻게 알았냐며 칭찬해 주신다.


목소리는 두 톤 높이고

자세는 편하게

두 손은 가슴 위로

눈은 관람객을 바라보라 하셨다.


처음에는 버벅거렸지만

차츰 자신감이 붙었다.


더, 더, 더하고 싶었다.


어느 토요일 오후.

큐레이터분께 급하게 연락이 왔다.


VIP가 갑자기 오시는데

제시간에 도착하기 어려울 것 같다.

대신 전시해설을 맡아달라 하셨다.


잠시 후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무리가 나타났다.

기존보다 더 또박또박 발음하려 노력했다.


해설을 너무 잘 들었다는 칭찬도 들었다.

뒤늦게 나타난 큐레이터분도 엄지를 치켜드셨다.


3개월 계약 만료 후

큐레이터분이 또 다른 제안을 주셨다.


얼마 후 기간제근로자 채용 공고가 나 갈 예정인데

관심 있으면 꼭 지원해 보라셨다.


너무 감사했지만 거절했다.


나이 서른.

언제까지 기간제근로자, 비정규직으로 일할 수 없다.


100만 원 남짓 벌어봐야 겨우 입에 풀칠밖에 못한다.

낮은 임금에서 시작하더라도 미래가 있는 직장이 필요했다.


사실 3개월 동안 여러 기관에 서류를 넣었지만

대부분 탈락했다.

어렵게 면접까지 가서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다시 문화재 발굴 현장으로 돌아가야 할까?

사실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다.


지방에 있는 문화재발굴기관에 서류를 넣었다.

면접을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또 떠돌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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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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