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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인생 첫 공간은 외갓집

by 조은미


나는 외할머니 집에서 엄마의 첫째 딸로 태어났다. 엄마의 산후 몸조리와 갓난아기였던 나를 매만져주신 외할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모녀는 잠시 그곳에 머물렀다. 외할머니 집의 소박한 방이 내 생애 첫 번째 공간이었다.

우리가 사는 집과 할머니의 집은 멀기도 해서 엄마는 아주 가끔 나만 데리고 할머니에게 가신 적이 많다. 두 번의 전쟁을 호되게 겪으시고 대부분의 생애를 지독한 결핍 속에 사셨던 외할머니는 엄마에게 오래도록 같은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하셨다고 했다. 50년을 헐벗고 사느니 10년만 살아도 배부르고 등 따시게 사는 게 낫다고... 그러나 말 잘 듣는 딸이었던 엄마는 살다가 슬픔이 복받칠 때면 할머니를 찾았고, 그때마다 할머니는 닭이며 토끼를 잡아 우리를 먹였다. 마당 한 귀퉁이의 토끼장 앞에서 희고 검은 토끼, 빨간 눈의 토끼를 한참이나 보고 들어왔는데. 지금 맛나게 먹고 있는 것이 토끼라는 것을 알았을 때 놀라고 슬펐던 기억이 있다. 두 동생들과 달리 나는 희미하지만 외할머니의 모습과 그 품 속 느낌을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행스럽게도 나의 외할머니는 그래도 엄마와 우리가 넉넉한 형편으로 잘 살고 있을 때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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