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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남산 아래 필동 집

살던 집 시리즈. 네 번째. 필동

by 조은미

아버지는 나를 사립학교에 보낼 생각으로 걸어서 통학할 수 있는 중구 필동에서 집을 찾으셨다. 우리가 살았던 아담한 일본식 단층집은 진청색 큼지막한 철대문 안쪽 옆으로 멋스러운 수형의 꽤 나이 든 향나무 두 그루가 있었다. 문의 양쪽으로 듬직하게 뻗어나간 나뭇가지는 대문을 닫아도 밖에서 보였다. 나는 그 향나무집 첫째 딸로 불렸다.


철대문 안 계단을 지나 현관문을 열면 신발을 벗고 올라서는 좁은 마루가 나오고 한번 더 문을 열어야 집 안이다. 왼쪽 사랑방을 포함해서 사방이 모두 미닫이 문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 문들을 모두 열어놓으면 거실 방은 놀랍게 커지지만 닫으면 다시 몇 개의 방으로 나누어졌다.


남산 위에 우뚝 선 우리 학교로 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우선 나는 언덕길을 따라 집들을 끼고 돌아가는 샛길을 더 좋아했다. 등교 길에 만나는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걸었던 숲 속 냄새, 우리의 발걸음을 자꾸 붙잡았던 라일락과 아카시아 꽃내음을 잊을 수 없다. 다른 하나는 차들이 다니는 길 옆 보도로 내려오다가 '한국의 집'을 지나 대로변의 보도를 걸어가는 길이다. 큰길과 나란히 가다가 옛 KBS 방송국 쪽 언덕을 오르면 벌써 노란색 우리 학교가 보였다. 종종종 걸어가는 우리들을 보고 지나는 어른들은 병아리 떼 같다고 웃으셨다.


학교 난간 층층마다 아래로 늘어지는 국화 화분들이 보이면 이제 도착이다. 가을 내내 보았던 노랑꽃과 늘 싱그러웠던 국화향은 학부모들이 때맞춰 새 화분을 들고 오신 덕분이라는 것은 내가 반장이 되었을 때에야 알았다. 동생들과 함께 다녔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마주한 중학교에 배정되는 바람에 나는 어린 시절에 더 어린 시절이 그리워 초등학교 쪽을 기웃대는 중학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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