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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영등포 역전 집

살던 집 시리즈 세 번째 집

by 조은미


유치원에 다닐 무렵 나는 계단이 많은 집에 살았다. 쉬지 않고 쭈욱 계단을 오른 다음 몸을 왼편 옆으로 돌리면 문이 나왔다. 작은 아버지 집은 1층, 우리는 2층이다. 나무로 모양을 내어 짠 틀에 또 나무 판을 끼워 만든 큼직한 가족 침대 위에 요를 깔고 이불을 덮고 나란히 잠을 잤다. 겨울이면 엄마는 펄펄 끓인 뜨거운 물을 담은 쇠통을 두툼한 수건에 말아서 발치에 두셨다. 생활공간인 바닥의 온기 대신 커다란 난로와 둘러진 쇠 망 울타리와 바깥을 향해 몇 번 꺾긴 긴 연통이 생각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살았던 2층 그곳은 살림집으로 지어진 집은 아닌 듯싶다. 그곳에서 여동생이 둘이나 생겼다.


대부분 나는 집 안에서 놀았고 가끔 한발 한발 조심스레 계단을 내려가 대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과 동네 아이들이 노는 것을 구경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내 동생은 골목을 쏘다니며 저보다 큰 애들과 뛰어다녔는데 그러다 집을 잃어버려 식구들을 여러 번 놀라게 했다. 파출소 연락을 받고 달려 나간 엄마는 눈물, 콧물, 땟국물 범벅인 동생을 찾아오셨다. 길이면서 놀이터이기도 했던 집 앞 그 골목이 생각난다. 가끔 1층에 사는 사촌언니는 우리들을 데리고 옥상에 올라갔다. 내가 까치발을 하면 높은 옥상 벽 넘어 영등포 일대의 풍경을 볼 수는 있었지만, 보통은 널찍한 옥상에서 나는 벽을 따라 뛰어다녔다. 쿵쿵거리는 소리를 들으면 엄마는 우리가 재미있게 노는가 보다 안심했다. 나는 햇살을 뿌리는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는 옥상이 좋았다.

무더운 여름밤이면 돗자리와 부채를 든 사람들이 영등포 역전 광장으로 모인다. 마치 모래사장에 펼쳐진 파라솔 아래의 피서객처럼 저마다 돗자리에 누워 바다대신에 광장 앞 오가는 차들과 별들을 함께 보며 밤 피서를 했다.


유치원에 빨리 가려면 영등포 재래시장을 통과하면 된다. 그곳은 늘 사람들로 북적였다. 김장철이면 바닥에 배추와 여러 재료들이 쌓여있었고, 지게를 지거나 수레를 끄는 사람들의 소리가 요란했다. 나는 엄마 손을 꼭 잡고서도 땅만 보고 요리조리 배춧잎을 피해 걸었다. 밟으면 미끄러진다는 엄마말에 잔뜩 긴장한 채 종종걸음 했던 기억이 난다. 성탄절 재롱잔치 겸 방학식을 마치고 난 후 무대 위에서 찍었던 흑백사진이 남아있다. 노랑 저고리와 활짝 펴진 빨간색 짧은 겹치마를 입고 살짝 웃고 있는 어린 내가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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