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던 집 시리즈 두 번째 집
엄마는 나를 품에 안고 아버지와 함께 월곡동 집으로 들어갔다. 전쟁을 견딘 한옥이었는지, 그 이후에 지어졌는지 잘 모르겠지만, 여기저기 고친 구석이 많은 널찍한 집에서 자랐다.
우리가 이 집의 안방을 차지할 때, 그곳에는 이미 몇 가족이 살고 있었다. 마당 한쪽의 펌프 우물과 부엌 그리고 ㄷ 자로 이은 지붕 밑 같은 하늘 아래를 오갔던 사람들, 사랑채와 이어진 방들에 북적대던 이들은 모두 친척이었다. 아이들도 예닐곱 명 정도 있었다. 한두 명 만 빼고 모두 나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내가 항렬이 높아서 모두 함부로 하지 않았을뿐더러 내가 말문이 터질 때부터 어른들은 나보고 그들에게 언니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다. 엄마는 부엌 근처에는 얼씬도 않고 나 만 돌보았다.
누군가가 마당 끝에 있는 닭장 속 닭들을 풀어놓았다가 다시 집으로 들이곤 했는데, 가끔씩 안채 쪽으로 겁 없이 오는 닭을 보면 함께 쫓아다니며 놀았던 기억이 난다. 푸드덕대는 닭 한 마리를 끌어안고 해맑게 웃고 있는 사진을 보니 확실히 유년의 나는 겁이 없었나 보다.
집과 가까운 거리에 기찻길이 있어서 칙칙폭폭 기차 소리가 친근했다. 내가 아기였을 때에 엄마는 나를 업고 기찻길 옆을 한참씩 걸었다고 한다. 아버지 덕분에 갑자기 집안의 나이 어린 어른이 되어버린 엄마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서 많이 힘들었다. 그렇게 월곡동에 살다가 내가 유치원에 갈 나이가 되었을 때, 우리는 영등포로 이사했다. 당시 영등포는 월곡동에 비하면 훨씬 번화한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