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월곡동의 닭 그리고 철길

살던 집 시리즈 두 번째 집

by 조은미

외갓집에서 몸조리를 끝낸 엄마는 나를 품에 안고 아버지와 함께 월곡동 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마당 널찍한 집에서 자랐다. 전쟁을 치른 한옥인지, 종전 후에 지어졌는지 모르겠는, 여기저기 고친 구석이 많은 그런 집이었다.


엄마가 이 집의 안방을 차지할 때, 그곳에는 이미 몇 가족이 살고 있었다. 마당 한쪽 펌프 우물과 바닥이 푹 꺼져 내려가는 부엌 그리고 ㄷ자로 이은 지붕과 맞닿은 하늘 아래를 오갔던 사람들, 사랑채와 이어진 방마다 들락대던 이들 모두 일가 친적이었다. 아이들도 예닐곱 명 정도 있었는데 모두 나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항렬이 높은 나에게 함부로 하지 않았다. 나보고 아가씨라고 부르던 어른들은 내게 언니들을 보고 '언니'라고 부르면 안 된다고 단단히 말했다. 엄마는 부엌 근처에는 얼씬도 않고 '나'만 돌보았다.


아버지는 지방은 물론 종종 해외로 출장이 잦으셨다. 그럴 때면 엄마는 북적대는 사람들 속 외딴섬이 되었다. 어느 날, 먼 친척이라는 중년의 여자가 엄마를 찾아왔다. 처음 보는 그녀는 집안사람들과도 안면이 익은 듯 자연스레 마루를 지나 방으로 들어와 엄마 앞에 앉아서 고급진 연분홍색 아기 옷을 내밀며 말을 걸었다고 했다. “자네는 아직 앞길이 창창하니, 딸아이는 금이야 옥이야 잘 기를 테니 내게 주고 새 출발을 하게.” 엄마는 곁에 뉘어놓았던 나를 품에 급히 끌어안고 소리소리 지르며 나이 든 그 여자를 쫓아냈다고 했다. 하마터면 나는 엄마와 생이별할 뻔했다.


집안사람 중 누군가가 한 나절에 마당 끝 닭장 속 닭들을 풀어놓았다가 다시 집으로 들이곤 했는데, 가끔씩 닭 몇 마리가 안채 쪽을 기웃대면, 그 닭들을 쫓아 마당을 돌며 놀았던 기억이 난다. 푸드덕대는 닭 한 마리를 끌어안고 웃고 있는 사진을 보니 확실히 유년의 나는 겁이 없었나 보다. 엄마의 그늘과 상관없이 나는 그저 해맑게 그곳에서 자랐다.


집과 가까운 거리에서 달리는 칙칙폭폭 기차 소리는 무척 컸는데도 나는 무서워하지 않았다. 해가 저물어가도 여전히 밖에서 어울려 놀고 있을 때, 밥 먹으라 부르는 어른들의 큰 소리를 기차가 삼킨 날이 허다하다. 그 기찻길에서 엄마는 나를 업고 하염없이 걷다 돌아오곤 했단다. 아버지 때문에 갑자기 나이 어린 집안 어른이 되어버린 엄마와 나는 그렇게 월곡동의 집에서 살았다. 내가 네댓 살이 되자 아버지는 나를 유치원에 보내야 한다며 영등포로 이사했다. 당시 영등포는 월곡동에 비하면 훨씬 번화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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