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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희한한 방에서 하나, 둘, 셋

살던 집 시리즈. 열다섯 번째 집

by 조은미

시어머님과 형님 내외가 계시는 화곡동 집에서 신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님 건강에 이상신호가 왔다. 그리고 곧 간암 말기로 확진되었다. 어머님은 몇 달 버티지 못하시고, 내가 첫 아이를 갖기도 전에 소천하셨다. 다리를 주물러 드릴 때마다 시어머님은 당신의 세월을 들려주셨다. 엄마와는 또 다른 고단한 인생 이야기. 전쟁을 두 번 겪으신 당신들의 세대는 모두 절절한 사연들을 품고 사셨다. 어머님은 기도와 금식으로 그날들을 맞서 견디시다 예순을 못 넘기시고 아버님 곁에 묻히셨다.


어머님이 쓰시던 안방으로 형님 내외의 살림이 들어갔다. 우리 방과 맞닿아있던 형님내외의 방문을 터서 이제 우리의 작은 방에 큰 방이 이어졌다. 이 희한한 방에 살면서 알콩달콩 아이 셋을 낳았다. 91년, 93년, 95년.


남편은 대학 졸업 후 신학교에 입학했고 다음 해, 미국에서 열리는 서머스쿨에 참가하게 되었다. 몇 해 전 강제 출국당한 미국인 목사 부부가 보고 싶었던 우리는 일정을 조정해서 함께 가게 되었다. 첫 아이를 임신 중이던 나는 겁도 없이 5개월 동안 미국의 여러 지역을 방문하고서 거의 만삭이 되어 돌아왔다. 잊지 못할 추억이 된 여행. 특별히 건강한 출산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하고 삶의 방향이 정해지는 결혼 후 첫 가족여행을 하고 왔다.


91년 11월에 첫 아이를 순산하며 2년 터울로 두 아이를 더 낳았다. 모를 때 더 무서운 것처럼 출산의 과정을 충분히 이해하며 그 두려움을 떨치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 신묘막측한 여자의 몸의 기능을 믿고, 더 자주 더 크게 진통이 올 때마다 나는 아기를 더 빨리 만나게 될 것을 기뻐했다. 출산의 감격을 미리 당겨와 고통의 시간을 줄이는 효과는 생각보다 강력했다.


말짱한 정신으로 4.2 킬로의 건강한 첫 아이를 7시간 만에 낳았다. 활기차게 버둥대는 아기의 팔다리를 보았고 힘찬 울음소리를 들었다. 남편은 간호사에게서 우리의 첫아기를 받아 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엄마품에 처음 안긴 그 아기가 젖을 빨았다. 나는 언제든 다시 보기 되는 영상처럼 나의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출산의 순간을 지금도 선명히 떠올릴 수 있다. 그렇게 엄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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