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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화곡동 다세대 주택 2층

내가 살던 집 시리즈 열세 번째 화곡동

by 조은미

우리는 아버지의 마지막 유품 하나를 장롱 속에 깊이 넣고 이사 다녔다. 마흔여덟 개의 팔이 몸통 사방에 골고루 달린 자그마한 48수 부처상, 계동 집 금고 안에 소중히 보관됐던 물건이다. 엄마는 다 같이 기도하자고 했다. "하나님 아버지, 부처님 팔리게 해 주세요." 종종 기도 중에 웃음이 터졌는데, 기도를 듣던 하나님이 웃으실 것 같기도 하고, 화가 나실 것 같기도 해서였다. 이 기도에 의미를 따지려고 하면 엄마는 그냥 같이 기도하자며 우리를 달랬다. 그리고 '아버지~ 아버지~"를 부르며 처량하게 울며 기도하셨는데, 나는 그때마다 내 아버지가 생각나서 같이 울었다.


사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직 후부터 엄마는 그래도 장녀라고 나를 데리고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며 불상을 팔러 가곤 했었다. 나는 엄마 옆에 앉아 그저 꿀 먹은 벙어리 마냥 있다가 왔다. 지금 생각하면 그들의 측은지심을 불러일으키려면 막내를 데리고 다니는 게 나았을 것 같기도 하다. 기도하고 기도했지만 팔리지 않던 이 부처상은 떠돌이 생활 십 년 만에 아빠가 알려주신 가격의 십 분의 일도 안 되는 헐 값에 팔렸다. 그리고 엄마와 동생들은 반지하를 벗어났다.


나는 결혼해서 시댁에 들어가 살게 되더라도 엄마와 동생이 가까이에 있기를 바랐다. 나의 마음을 전해 들은 시어머니는 늘 마실 다니던 복덕방 할머니와 함께 시댁에서 도보로 5분 되는 곳의 다세대 주택을 나의 친정집으로 찾아주셨다.


크기가 다른 철 대문이 나란히 두 개 있었다. 큰 대문은 집주인이 드나드는 문이고, 작은 문은 반지하 아랫집과 지상의 우리가 사용하는 문이다. 주인집의 뒷 쪽 외벽 위아래로 몇 세대의 셋집이 붙어있는 다세대 주택, 앞집도 옆집도 모두 비슷비슷한 집 장사들이 지은 우리 집을 찾느라 식구들은 이사를 하고서도 몇 번이나 골목길을 왔다 갔다 했다.


작은 대문으로 들어와 몇 계단 위의 현관문을 열면 바로 오른쪽에 화장실이, 맞은편에는 싱크대가 보인다. 볕드는 길가 쪽 창이 있는 큰 방에서 엄마와 막내 동생이 잠을 잤고, 나는 부엌 끝의 작은방을 썼다. 이 집에 살며 동생은 유치원 교생 실습을 끝내고 대학을 졸업했고, 남편과 나는 언제든 볼 수 있는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데이트를 하며 결혼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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