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던 집 시리즈. 열여섯 번째. 결혼 후 첫 이사
시어머님이 없는 시댁에서 손위 동서 내외와 같은 대문 안에 사는 것이 불편해졌다. 아이들이 늘고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갈수록 허락된 공간이 답답했다. 우리는 결혼 후 처음으로 어린애 셋을 데리고 이사하기로 했다. 친정과 멀지 않은 곳에 신축 다가구 주택 2층을 찾았다.
주방 옆에 첫 식탁이 생겼고, 처음으로 화장실에서 편히 아이들을 씻길 수 있는 집이다. 남편은 우리 집 최초의 컴퓨터를 조립해서 작은 방에 두고 컴퓨터 방이라고 했다. 온통 처음과 새로움 투성이인 밝은 셋집이 우리는 마음에 들었다.
아이보리색 방문에 당시 유행이던 상큼한 민트 몰딩이 둘러진 안방은 널찍했고 큼직한 창문으로는 햇살과 바람이 실컷 들어왔다. 창을 열고 네 살, 두 살 그리고 백일이 가까운 아가와 함께 방바닥에 누우면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이 보였다. 초저녁 EBS의 '고고의 영어 모험'을 함께 보며 비디오테이프에 녹음했던 것을 다음날 오전에도 보여주었다. 또르르 셋이 나란히 앉아 비디오에 집중하는 모습이 너무나 귀엽고 흐뭇했다.
이 시절 식사 시간은 이랬다. 막둥이를 바퀴 달린 요람에 눕혀놓고 나는 다리를 뻗어 발로 요람을 흔들면서, 동시에 무릎 위에 안고 있는 둘째와 맞은편에 앉혀 놓은 큰 아가의 입에 밥과 반찬을 번갈아 때맞춰 넣어주었다. 사이사이 내 입에도 밥을 넣었다. 셋이 잠들면 나도 누웠다. 때때로 아이들을 봐주시며 내가 잠시 쉴 수 있도록 도와주신 친정엄마와 이런 우리의 수고를 알아주고 함께하는 남편 덕분에 나는 그 어려운 시절을 무사히 기쁘게 보냈다.
온갖 처음이었던 좋은 일들이 쌓인 우리 다섯 식구의 첫 집에서 생각보다 오래 살지 못했다. 계절이 바뀌자 그렇게 흡족했던 안방의 큰 창문 아래에서 곰팡이가 무섭게 피어올랐다. 게다가 남편의 일터가 너무 멀기도 해서 2년을 채우지 못하고 다시 집을 옮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