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던 집 시리즈. 열여섯 번째. 결혼 후 첫 이사
날이 갈수록 시어머님 없는 시댁에서 손위 동서 내외와 한 대문 안에 사는 것이 불편해졌다. 세 아이들이 쑥쑥 커갈수록 우리의 허락된 공간은 답답했다. 결혼 후 처음으로 어린애들과 함께 이사하기로 했다. 시댁이나 친정에서 너무 멀지는 않은 화곡동의 신축 다가구 주택 2층으로 정했다.
주방 옆에 작은 식탁을 놓고, 의자에 앉아 밥을 먹고, 아이들을 편히 씻길 수 있는 욕실을 갖춘 첫 번째 집이다. 남편은 조립한 첫 컴퓨터를 작은 방 책상 위에 두고 그 방을 컴퓨터 방이라고 불렀다. 온통 처음과 새로움 투성이인 환한 셋집이 나는 마음에 들었다.
아이보리색 방문에 상큼한 민트색 몰딩이 둘러진 안방은 지난 방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넓고 밝았다. 안쪽에서도 밖을 볼 수 있는 커다란 창문으로 햇살과 바람이 실컷 들어왔다. 창을 연 채, 세 아가들과 함께 방바닥에 누우면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이 보였다. 초저녁마다 함께 본 EBS의 '고고의 영어 모험'을 비디오테이프에 녹화해서 다음날 오전에도 보여주었다. 또르르 벽에 붙여 앉힌 다음, 비디오를 틀어주면 눈을 똘망이며 집중하는 모습이 너무 귀엽고 흐뭇했다.
바쁜 식사시간, 셋째가 누운 요람에 다리를 뻗어 흔들고, 무릎 위 둘째와 맞은편 큰 아가 입에 밥과 반찬을 번갈아 넣어 주며 그 사이사이 나도 먹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잠들면 나도 누웠다. 보험일을 하면서도 틈틈이 우리 집에 들러 집안일을 도와주신 친정엄마 덕분에 바쁘고 힘든 한때를 기쁘고 감사하며 행복하게 보낼 수 있었다.
셋째의 백일이 다가오던 1995년 6월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일어났다. 둘째가 걷기 시작하고 말문을 트려 한창 소리 내고 있을 때였다. 성수대교 참사의 충격이 생생한데, 또다시 어이없는 인재가 또 일어났다. 막내를 안고 뉴스를 보는데, 눈물이 나고 몸이 떨렸다. 그리고 이 집에서는 처음 생각보다 오래 살지 못했다. 계절이 바뀌자 그렇게 좋아했던 안방 큰 창문 아래에서 곰팡이가 무섭게 피어올랐다. 알고 보니 우리 집도 결로 방지에 소홀한 집 장사의 날림집이었다. 꼭대기층에 사는 집주인에게 이야기했더니 환기를 자주 안 해서 그런 거라며 곰팡이가 핀 것이 우리 탓이라고 했다. 환기한다고 한겨울에 유일한 안방의 큰 창을 수시로 열어 두면 나와 세 아이들은 찬 바람을 피할 곳이 없는데… 방법을 찾지 못한 우리는 남편의 일터가 너무 멀기도 한 이 집을 그만 떠나기로 했다. 2년을 채우지 못하고 다시 짐을 쌌다.